본디 조복(朝服) 위에 차는 ‘금하’라는 명칭에서 유래한 듯하며, 사천왕사성전(四天王寺成典)·봉성사성전(奉聖寺成典)·감은사성전(感恩寺成典)·봉덕사성전(奉德寺成典)·봉은사성전(奉恩寺成典) 등 왕실의 사원을 관리하는 관청의 장관직명으로 쓰였다.
759년(경덕왕 18)에 한때 감령(監令) 또는 검교사(檢校使)로 개칭되었다가 776년(효공왕 12)에 다시 본래의 명칭대로 고쳐졌으며, 그 뒤 805년 (애장왕 6)의 개혁 때에 영(令)으로 바뀌었다. 정원은 1인이며, 대아찬(大阿飡) 이상 대각간(大角干)까지의 사람으로 임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