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와 살육 ()

현대문학
작품
최학송(崔鶴松)이 지은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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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최학송(崔鶴松)이 지은 단편소설.
내용

1925년 『조선문단』 9월호에 발표되었다. 『탈출기(脫出記)』·『박돌(朴乭)의 죽음』·『홍염(紅焰)』과 같이 초기 경향파(初期傾向派) 작품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중학과정을 마친 정수라는 청년이다. 그는 일자리를 얻지 못해 어머니와 아내, 딸을 데리고 북만주로 간다.

그러나 거기서도 추위와 가난 속에 아내는 산후풍으로 약 한 첩 못 쓰고 누워 있고, 어린 딸은 아랫도리조차 제대로 가리지 못한 채 굶주려 있고, 노모는 집주인의 집세 독촉을 알린다. 아내가 경련을 일으키자 정수는 한의원에게 달려가 아내의 구원을 호소하자, 한의원은 치료비를 못 갚으면 머슴을 살겠다는 각서를 받은 뒤에야 왕진에 응한다.

침 몇 대에 아내가 의식이 들기 시작하자, 정수는 보이지 않는 노모의 행방을 물으나 알 길이 없고 수많은 마귀가 자기 가족에게 달라붙는 환영에 빠져든다.

그러다가 황급한 인기척에 놀라 깨어 보니 노모가 피투성이가 되어 이웃에게 업혀 온다. 가족이 굶는 것을 보다 못한 어머니가 머리 타래를 팔아 좁쌀을 사오다가 중국인 개에게 물어뜯긴 것이다.

처참하게 신음하고 있는 노모, 언제 다시 발작할지 모르는 아내, 굶주린 어린 딸, 송장처럼 길게 누워 있는 가족들 위로 피에 굶주린 마귀들이 물어뜯는 환영 속에 정수는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킨다.

“아아, 부셔라. 모두 부셔라.” 하며 식칼을 들고 아내 학실과 노모를 차례로 내리찍는다. 그러다가는 밖으로 뛰쳐나가 행인·상점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찌르고 부수다가 결국에 순사를 찌르고, 중국인 경찰서까지 침입하다가 총에 맞아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은 생존의 권리마저 거부당했을 때 야기될 수 있는 비극적인 생의 종말을 보여준다. 작가의 초기 소설이 흔히 그렇듯 이 소설의 갈등은 개인 대 사회라기보다 가족을 한 단위로 하는 소집단과 사회라는 특이한 갈등관계를 형성한다.

정수는 가족에 대한 강한 연대의식과 구심력 때문에 당시 유행처럼 번졌던, 새로운 질서를 표방하고 거창한 구호를 외쳐대는 혁신운동에 헌신하지 못하고 그대로 가족의 일원으로 잔류하여 소박하나마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였다.

가족이야말로 어둡고 고통스런 삶을 위무받을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러므로 이 삶에서의 일탈이나 상실은 그대로 존재의 근거와 뿌리를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했다. 이역땅 만주를 지배하는 사회질서도 우리나라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있는 자, 가진 자들만을 비호하는 사회양식 그대로였다.

산임자·집주인·의원·약국주인 등으로 대표되는 가진 자들은 하나의 지배계층으로 상징되고, 이에 덧붙여 원주민인 중국인의 횡포와 살을 에는 모진 추위는 헐벗고 빈한한 자들을 괴롭히는 요인으로 가중된다.

극도의 굶주림과 추위, 게다가 가족의 생존권마저 거부당한 극한상황 속에서 취할 수 있는 주인공의 행동으로는 광기 어린 극단적 발악밖에 남는 것이 없다. 그는 가족을 몰살하는 자학과 닥치는 대로 타인을 도살하는 가학의 이중적 극치 속에서, 자타를 부정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강변한다.

이 소설의 가치는 1920년대 만주벌판을 무대로 신음하다 사라져 간 동포들의 참상이나 그 정황을 다룬 특이함보다, 오히려 한 가족의 수난을 통해 전 민족적 단위의 역경과 궁핍으로 연역 확대가 가능한 상징적 표출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단일한 효과, 기분·정서, 집중된 인상의 제시, 그리고 서술된 시간의 단축 등의 구조적인 특성은 근대 단편소설의 특징과 부합되는 수작(秀作)으로 간주할 수 있다. 주인공이 발광하여 닥치는 대로 살육하는 과정에서 그 대상이 선별되지 못했다는 점은 주제의식 및 역사의식의 결여라는 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참고문헌

『한국현대문학사』(김윤식, 일지사, 1985)
『한국현대소설사』(이재선, 홍성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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