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개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행첨지중추부사, 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선택(宣澤)
시호
평호(平胡)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05년(태종 5)
사망 연도
1484년(성종 15)
본관
안산(安山)
주요 관직
지중추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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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행첨지중추부사, 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산(安山). 자는 선택(宣澤). 아버지는 연성군(蓮城君) 김정경(金定卿)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22년(세종 4) 음직(蔭職)으로 남부녹사(南部錄事)에 제수되었다.

이후 세자우시직(世子右侍直) · 전농시주부(典農寺主簿) · 대호군 겸 판통례문사(大護軍兼判通禮門事) · 상서원소윤(尙瑞院少尹) 등을 역임하였다. 1455년(세조 1) 첨지중추부사로 원종이등공신(原從二等功臣)에 책록되면서 동지중추부사에 승진하였다.

1457년 중추부사가 되고 다음 해 사은사 김세민(金世敏)의 부사로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59년 열무(閱武) 때에 보인 무재(武才)로 가정대부(嘉靖大夫)가 되었다. 1461년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오르면서 행상호군(行上護軍), 이어 행첨지중추부사 · 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하였다.

1465년 원각사제조(圓覺寺提調)로서 원각사의 조성을 지휘하였다. 1467년 행의정부좌참찬(行議政府左參贊)에 취임하였다. 1468년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승진되었으나, 남이(南怡)의 옥사에 연루된 사위 조경치(曺敬治)로 인하여 주1

1470년(성종 1) 서용되었고, 이후 행상호군 · 의묘조성제조(懿廟造成提調) ·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또 공혜왕후(恭惠王后)의 산릉도감(山陵都監)과 선공감(繕工監)의 제조를 겸하였다. 성품이 민첩하고 해서(楷書)에 능하였으며, 영선(營繕)에 공이 있었다. 시호는 주2

참고문헌

『세조실록(世祖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눌재집(訥齋集)』
주석
주1

남이 옥사 및 파직 : 『예종실록』 1권, 1468년(예종 즉위년) 10월 28일. "공신의 호칭을 3등으로 나누어 정하고 남이의 어미를 환열시키다"

주2

시호 평해 추증 : 『성종실록』 172권, 1484년(성종 15) 11월 25일. "판중추부사 김개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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