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동지의금부사, 평안도관찰사,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57년 김홍도(金弘度)와 김여부(金汝孚)의 반목으로 옥사가 일어났을 때 김홍도의 당으로 몰려 파직되었다가, 1562년 다시 전의 관직인 이조정랑으로 복직되었으나 아버지의 상중이어서 나가지 않았다.
삼년상을 마치고 다시 벼슬길에 올라 첨정 · 사간(司諫) · 집의(執義) · 응교(應敎) · 전한(典翰) · 직제학 등을 역임했고, 1566년 문과중시에서 장원을 차지해 동부승지에 제수되었다.
1571년(선조 4) 이조참의 · 예조참의에 제수되어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황해도 · 전라도의 관찰사를 거쳐 공조참판 · 형조참판과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등을 역임하였다.
1575년 동서 분당 때 심의겸(沈義謙)과 함께 서인으로 지목된 적도 있으나, 당파에는 별로 깊이 간여하지 않고 오히려 당쟁 완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 뒤 평안도관찰사로 있다가 1581년 종계변무(宗系辨誣)를 위한 주청사(奏請使)로 중국에 다녀왔다. 이어서 예조참판에 올라 경연관(經筵官)이 되었다.
우리 나라의 산천 · 마을 · 도로 · 성지 등의 형세와 전술적인 문제점, 농작물의 생산 현황, 각 지방의 전통 · 연혁 · 씨족 원류 등을 두루 파악해 기록으로 남겼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이조판서로 추증되었고, 나주 월정서원(月井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선조실록(宣祖實錄)』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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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七(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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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김계휘 탄핵 상소 : 『명종실록』 22권, 1557년(명종 12) 5월 21일. "양사가 청주 목사 김홍도와 좌랑 이귀수·김계휘의 파직을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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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주청사로 명나라행 : 『선조수정실록』 15권, 1581년(선조 14) 5월 1일. "김계휘를 변무 주청사로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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