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정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중기에, 지평,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수(士受)
인물/전통 인물
  • 본관행주(幸州)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지평|장령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한미성 (브니엘중학교)
  • 최종수정 2025년 07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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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지평,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사수(士受).

생애 및 활동사항

1573년(선조 6) 강릉참봉으로 있을 때 조정에서 6품직으로 승진상신이 있었으며, 1579년에 지평(持平)이 되었다.

1581년에 유화(柳和)와 유온(柳溫) 사이에 벌어진 재산에 관한 소송이 상부기관에서 잘못 처리된 것을 알면서도 그 부당함을 말하지 않았다 하여 언관직에서 물러났다가 1583년에 장령(掌令)에 임명되었다.

태조의 정비 신덕왕후(神德王后)의 태묘(太廟) 배향문제에 대한 논란이 있었을 때, 그가 양사(兩司: 사헌부와 사간원)는 마땅히 부묘(祔廟: 삼년상을 마치고 신주를 사당으로 옮겨 모시는 일)를 청해야 되는데 각(閣)을 세워 제사지낼 것만 청한 점을 논박하자 그의 정연한 이론 앞에 양사는 일괄사표를 제출하였다.

그는 타인의 이목이나 사사로운 사정을 전혀 개의하지 않고 오직 대의명분에 따라 모든 일을 시행해 나가려고 힘썼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행주기씨보첩(幸州奇氏譜牒)』

주석

  • 주1

    : 기대정의 논박 내용 : 『선조실록』 17권, 1583년(선조 16) 3월 25일. "장령 기대정이 신덕 왕후의 태묘 배향에 대해 다시 거론하여 조정에서 논란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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