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풍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종부시정 겸 편수관, 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삼락재(三樂齋)
  • 적여(績汝)
인물/전통 인물
  • 본관의성(義城)
  • 사망 연도1834년(순조 3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병조참의
  • 출생 연도1786년(정조 1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호종 (안동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12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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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종부시정 겸 편수관, 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적여(績汝), 호는 삼락재(三樂齋). 김섭(金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표로(金彪老)이고, 아버지는 김성(金城)이며, 어머니는 장학호(張學浩)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14년(순조 14) 사마시에 합격한 뒤, 이듬해 평안도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이 되었으며, 온릉령(溫陵令)을 거쳐 예조좌랑과 호조 · 병조정랑을 역임하면서 춘추관기사관을 겸하였다.

1822년 장령이 되었다가, 같은 해 종부시정 겸 편수관이 되어 『선원보(璿源譜)』를 찬수한 공으로 1823년 병조참의에 올랐으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1824년 돈녕부도정으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김장생(金長生)의 예론을 열심히 따랐다.

참고문헌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매산집(梅山集)』

주석

  • 주1

    : 사마시 급제 : 『숭정기원후4갑술사마방목(崇禎紀元後四甲戌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30])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九(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 주3

    : 선원보략 증수 : 『순조실록』 26권, 1823년(순조 23) 4월 7일. "《선원보략》의 증수가 마무리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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