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적여(績汝), 호는 삼락재(三樂齋). 김섭(金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표로(金彪老)이고, 아버지는 김성(金城)이며, 어머니는 장학호(張學浩)의 딸이다.
1814년(순조 14) 사마시에 합격한 뒤, 이듬해 평안도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이 되었으며, 온릉령(溫陵令)을 거쳐 예조좌랑과 호조·병조정랑을 역임하면서 춘추관기사관을 겸하였다.
1822년 장령이 되었다가, 같은 해 종부시정 겸 편수관이 되어 『선원보(璿源譜)』를 찬수한 공으로 1823년 병조참의에 올랐으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1824년 돈녕부도정으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김장생(金長生)의 예론을 열심히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