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구는 1948년 제주4·3사건 당시 인민유격대 사령관으로 활동한 사회주의 활동가이다. 일제강점기 학도병으로 동원되어 관동군 장교로 복무하다가, 해방 이후 제주도 조천중학원에서 역사와 사회 과목을 가르쳤다. 1947년 3·10총파업에 참여하였다가 경찰에 연행되었고, 교사를 그만둔 뒤 남로당 제주도당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한라산으로 입산하여 1948년 4월 3일 발발한 봉기에 참여하였고, 조천, 제주, 구좌면 출신들로 구성된 3·1지대 지대장을 맡았다. 같은 해 8월부터는 인민유격대 사령관으로 활동하였으며, 1949년 사살되었다.
1920년 제주도 제주시 신좌면 신촌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서 태어났다.
일본의 리쓰메이칸대학[立命館大学]에 다니다가 학도병으로 동원되어 관동군 장교로 복무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자동 전역되었으며,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조천중학원에서 사회와 역사를 가르쳤다. 1947년 3·1발포사건으로 촉발된 제주도인민위원회 주도의 3·10총파업에 참여하였다.
이후 제주도에서 진행된 검거작전 과정에서 제주경찰서에 연행되었다. 한 달 이상 경찰서에 구금된 채, 한쪽 고막이 터져 안 들릴 정도로 심하게 고문을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뒤 조천중학원에 장기휴직원을 내고 교사 생활을 그만두었다.
남로당 제주도당의 핵심 간부로 활동하다가, 1948년 1월 22일 남로당 제주도당 위원장 안세훈 등과 함께 경찰에 검거되었다. 1948년 4월 3일 제주4·3사건이 발발하자, 한라산에서 인민유격대 간부로 활동하였다. 4월 15일 남로당 제주도당부대회에서 인민유격대를 개편할 때 조천, 제주, 구좌면 출신으로 구성된 3·1지대 지대장을 맡았다. 같은 해 8월 김달삼이 북한에서 열린 제2차 남북연석회의에 제주도 대표로 참석하기 위해 월북한 뒤부터는 인민유격대 사령관으로 활동하였다. 1949년 6월 7일 경찰 토벌부대에 의해 사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