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조는 일제강점기~현대에 만주국군 군의관, 대한민국 제5관구 경찰청장, 제7사단 헌병대장 등을 지낸 의사이자 군인이다. 1929년 도쿄제국대학 수의학과, 1933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하였다. 콜럼비아레코드사 경성지점 문예부장을 지내고, 조선연예기업사를 설립하고 운영하였다. 만주국군 군의관으로 입대하여 1937년 소교로 전역하였다. 해방 후 제5관구와 제3관구 경찰청장을 지내고, 1949년 헌병 소령으로 특별임관하였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부역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1950년 11월 처형되었다.
1903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의 친형이다.
1929년 도쿄제국대학 수의학과를 졸업하였다. 재학 시절 재동경조선기독청년회[YMCA] 야구부 소속 유격수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후 1933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폐결핵 전문의가 되었다. 대학 졸업 직후 콜럼비아레코드사 경성지점 문예부장을 지내고, 콜럼비아악극단 창립에 관여하였다. 또한 극작가 최연 등과 함께 조선연예기업사를 설립하고 운영하였다. 1943년 경성에서 후생의원을 개업하였다. 만주국군 군의관으로 입대하여 1937년 주1로 전역하였다. 이러한 이력으로 인해 『친일인명사전』 군 부문에 수록되었다.
해방 후 경찰에 들어가 제5관구 경찰청장, 제3관구 경찰청장 등을 역임한 뒤, 1949년 6월에 헌병 소령으로 특별임관하였다. 그 뒤 제2사단 헌병대장, 제7사단 헌병대장 등을 지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당시 제7사단 헌병대장 신분으로 부대를 이탈하였다. 이 일로 인천상륙작전 이후 체포되어 ‘부역’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1950년 10월 29일 열린 계엄사령부 계엄고등군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 제32조 이적행위죄 위반으로 사형을 언도받았다. 11월 7일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고하정남(古賀政男)이 작곡한 대중가요 「사랑은 구슬퍼」의 편곡을 맡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