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엽은 일제강점기~현대에 일본군 장교, 대한민국 제17연대장, 수도사단장 등을 지낸 군인이다. 일제강점기에 메이지대학과 일본 육군항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군에서 장교로 근무하였다. 정부 수립 후 제17연대장, 수도사단장, 육군 제1훈련소장, 제1군단장, 육군 기획관리참모국장 등을 지낸 뒤 1960년 예편하였다. 전역 전인 1958년 선인학원을 설립하였다. 5·16군사쿠데타 이후 혁명재판에 회부되기도 하였다. 1993년 각종 부정과 비리 등으로 인해 학내 분규가 계속되자, 공립화를 조건으로 인천시에 선인학원을 기증하였다.
1923년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태어났다. 육군 참모총장 등 군 내 각종 요직을 지낸 백선엽의 친동생이다. 1958년 선인학원을 설립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메이지대학[明治大學]과 일본 육군항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로 복무하였다. 해방 이후 군사영어학교(軍事英語學敎)를 졸업하고 국방경비대 장교로 임관하였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 · 순천10·19사건이 발생하자, 제12연대 부연대장으로 2개 대대를 이끌고 토벌전에 참가하였다. 10월 27일 이후 빨치산 토벌을 내세우며 구례 지역에서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옹진반도를 지키는 제17연대장이었다. 당시 개성을 비롯한 서부전선을 지키는 제1사단장은 형인 백선엽 대령이었다. 이후 수도사단장, 육군 제1훈련소장, 제1군단장, 육군 기획관리참모국장, 육군참모총장 보좌관 등을 지낸 뒤 1960년 7월 예비역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 이후 부정축재, 수뢰죄 혐의로 '혁명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10개월 만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1981년에는 업무상 횡령 및 배임수뢰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가, 항고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다. 1993년 각종 부정과 비리 등으로 인해 학내 분규가 계속되자, 공립화를 조건으로 인천시에 선인학원을 기증하였다. 2013년 사망하였다.
태극무공훈장, 그리스 최고훈장, 미 은성무공훈장, 육군참모총장 공로표창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