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미는 여수·순천10·19사건 토벌전에 참가하고, 4·19 혁명 당시 서울지구 위수계엄사령관으로 활동한 군인이다. 1946년 조선경비사관학교를 2기로 졸업하고 조선국방경비대 소위로 임관하였다. 정부 수립 후 육군 장교로 여수·순천10·19사건 토벌, 한국전쟁 등에 참가하였다. 1960년 4·19혁명 당시 제15사단 사단장으로 서울지구 위수계엄사령관을 맡았다. 1961년 육군본부 민사국정국장을 지낸 뒤 1963년 육군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이후 국영기업체인 대한통운의 이사를 지냈으며, 2008년 사망하였다.
1917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고부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46년 12월 14일 조선경비사관학교를 2기로 졸업하고 조선국방경비대 소위로 임관하였다. 여수 · 순천10·19사건이 발생했을 때 육군 제3연대 2대대장으로 복무하며 토벌전에 참가하였다. 10월 27일 사건이 일단락된 후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남원여관 등지에 주둔하며 입산한 빨치산에 대한 토벌전을 전개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현지 주민들을 즉결심판 하는 등의 행위를 저질렀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제5사단 15연대 부연대장으로 문산지구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제1사단에 편입되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제15연대장으로 진급하여 평양에 입성하였다. 평양 점령 이후 제1사단 사병들에 대한 1계급 특진이 있었는데, 조재미도 중령에서 대령으로 진급하였다. 이후 북진을 거듭하다 후퇴한 뒤에 빨치산 토벌작전 등을 전개하였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이후 제2사단 부사단장, 육군본부 수송감, 항공감, 제1군 행정참모부장 등을 거쳐 1958년 6월 제15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1960년 4·19혁명이 발발하자, 서울지구 위수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되어 혁명을 완수하였다. 그러나 당시 계엄 비용을 횡령한 혐의로 조사받고 근신 처분을 받았다. 이후 육군본부 민사국정국장을 지낸 뒤 1963년 7월 1일 예비역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1963년 제3공화국 출범 뒤 국영기업체인 대한통운의 이사를 지냈다. 2008년 사망하였다.
한국전쟁 공훈으로 태극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등을 받았으며, 예비역 편입 당시 근무공로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