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우경 ()

현대사
인물
일제강점기~현대, 송화경찰서장, 서울시경찰국장, 내무부 치안국장,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 등을 역임한 경찰 관료.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0년
사망 연도
1995년
출생지
평안남도 양덕군
주요 저서
만성록
주요 경력
송화경찰서장, 서울시경찰국장, 내무부 치안국장,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
대표 상훈
금성무공훈장
관련 사건
암살미수사건, 5·16군사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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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윤우경은 일제강점기~현대에 송화경찰서장, 서울시경찰국장, 내무부 치안국장,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 등을 역임한 경찰 관료이다. 1900년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태어났으며, 일제강점기에 황해도 송화경찰서장을 지냈다. 해방 후에도 경찰 간부를 두루 지내다가 정부 수립 후 서울시 경찰국 경무과장을 역임하였다. 1949년 헌병 대위로 특별임관되었다가 1951년 서울시경찰국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내무부 치안국장을 거쳐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을 역임하였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 이후 혁명재판에서 부정축재 혐의로 처벌받았다.

정의
일제강점기~현대, 송화경찰서장, 서울시경찰국장, 내무부 치안국장,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 등을 역임한 경찰 관료.
인적사항

1900년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태어났다.

주요 활동

양덕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한학강습소를 수료하였다. 이후 경찰관교습소를 마치고 경찰에 들어갔다. 경부고시에 합격하였으며, 경부보를 거쳐 경부에 올랐다. 해주경찰서 사법주임, 황해도 송화경찰서장 등을 지내다가 해방과 동시에 면직되었다. 해방 이후 경찰에 복직하여 파주경찰서장, 영등포경찰서장, 마포경찰서장 등을 지낸 뒤 정부 수립 후 서울시경찰국 경무과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9년 반민특위 활동이 강화되고 친일파, 그중에서도 친일 경찰에 대한 청산 요구가 높아지자, 과거 일제강점기 경찰 간부들과 함께 육군 헌병 장교[대위]로 특별임관되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6월 예비역 편입됨과 동시에 서울시경찰국 국장에 임명되었다. 1952년 내무부 치안국장을 거쳐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을 역임하였다. 내무부 치안국장 시절에 열린 6·25 발발 2주년 기념식 때 과거 의열단 단원이던 김시원과 유지태 등이 이승만 대통령의 암살을 시도했다는 '암살미수사건'을 적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52년 6월 총선거 직후 치안국 사찰과를 통해 국회의원들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1960년 4·19혁명 이후 자신의 부하들을 자유당원으로 가입시킨 혐의와 구 황실재산을 매각하여 정치자금으로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 부정선거와 부정축재 혐의로 구속되었다. 구 황실재산을 배재학당에 매각한 것에 따른 독직, 비행 등은 4·19혁명이 발생하기 전인 1959년부터 문제가 되어 수사와 함께 국회에서도 문제 제기가 있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 이후 '혁명재판'에서 부정축재 혐의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1995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만성록』[서울프레스, 1992]이 있다.

상훈과 추모

금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신문·잡지 기사

『국민보』(1952. 7. 2.)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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