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흥은 일제강점기~현대에 일본군 장교를 거쳐 대한민국 육군 참모차장, 국방부장관 등을 역임한 군인이다.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로 근무하다가 해방과 함께 대위로 전역하였다. 이후 군사영어학교를 이수한 뒤 통위부 군수국장, 제6여단장, 육군사관학교 교장, 제주지구전투사령부 사령관 등을 지냈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에는 제7사단장, 제2군단장을 맡았다. 1960년 7월에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고, 전역 이후 주태국대사, 주스웨덴대사, 주이탈리아대사, 국방부장관, 대한석유공사 사장, 성우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21년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태어났으며, 본적지는 충청남도 공주이다.
신의주중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55기]를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로 근무하였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근위보병 제3연대 소위를 시작으로, 박격대 대장, 유수연대 보병포 중대장을 지냈다. 1943년 메이지대학[明治大學]에서 열린 '특별지원병 궐기대회'에서 조선인 학병 지원을 권유하는 연설을 하였다. 해방 직전 일본군 제206사단 중박격포연대 제2대대장을 지내다가, 해방과 함께 대위로 전역하였다. 이러한 이력으로 인해 『친일인명사전』 군 부문에 수록되었다.
해방 후 군사영어학교(軍事英語學敎)를 이수한 뒤 국방경비대 주1로 임관하였다. 통위부 군수국장, 제6여단장, 육군사관학교 교장 등을 지낸 뒤 1949년 상반기 제주지구전투사령부 사령관을 지냈다. 한국전쟁 발발 후에는 제7사단장, 제2군단장을 맡았다. 중공군의 남하 이후 강원도 현리전투에서 작전에 실패하여 많은 사상자와 포로를 내기도 하였다. 육군 참모차장, 연합참모본부총장, 제1군사령관 등을 지낸 뒤 1960년 7월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이후 주태국대사, 주스웨덴대사, 주이탈리아대사, 국방부장관, 대한석유공사 사장, 성우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2011년 사망하였다.
저서로 『격동의 세월: 유재흥 회고록』[을유문화사, 1994]이 있다.
임시공훈기장, 태극무공훈장, 미국 은성훈장, 수교훈장, 그리스 페닉스 대훈장, 벨기에 최고훈장, 페루십자무공훈장, 비행훈장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