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의 전신으로 1945년 11월 13일 미군정 당국은 <군정법령>을 공포하여 국방사령부를 설치하고, 국방력의 조직·편성·훈련 등 제반 업무에 착수하였다. 초대 부장은 아고(Argo,R.W.) 미육군 대령이었다.
국방사령부 산하에는 군무국(軍務局)과 경무국(警務局)을 두었는데, 군무국은 다시 육군부와 해군부를 두어 경비대 창설 준비를 진척시켰고, 경무국은 경찰업무를 관장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1946년 1월 남조선국방경비대와 해안 경비를 위한 해방병단(海防兵團)이 창설되었다.
국방사령부 안에 군사와 경무 2국을 둔 것은 미군정의 치안유지 기능을 일원화하기 위한 조처였다고 하겠으나, 소관 업무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군대와 경찰을 단일기구 안에 묶어 놓음으로써 편제 및 운영에 적지 않은 모순과 마찰을 빚었다.
그리하여 미군정 당국은 1946년 3월 29일 <군정법령> 제64호로 군정청의 각 국(局)을 부(部)로 개칭함으로써 국방사령부는 국방부로 승격되면서 그 예하에 군무국만을 관할하게 되었고, 군무국 예하에 육군부와 해군부는 그대로 두었다.
그런데 1946년 5월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던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소련측은 미군정 당국이 한국임시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국방부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데 대하여 항의를 제기하였다.
이에 미군 사령관은 국방의 개념을 국내 치안으로 바꾸기로 결정하고, 6월 15일 <군정법령> 제86호를 공포하여 국방부를 국내경비부로 개칭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한국측에서는 국방의 뜻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대한제국 때의 3영(營)인 우영(右營)·후영(後營)·해방영(海防營)을 통합한 명칭인 통위영(統衛營)을 따서 국방부를 통위부로 개칭함과 동시에 군무국을 폐지하고, 그 산하 2개 부를 조선경비국(朝鮮警備局)과 조선해안경비국(朝鮮海岸警備局)으로 개칭하였다.
이에 따라 남조선국방경비대는 조선경비대로 개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