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백 간첩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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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5·30총선 등에서 합법을 가장하여 북한의 정치적 침투교두보를 확보하려던 성시백의 간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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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50년 5·30총선 등에서 합법을 가장하여 북한의 정치적 침투교두보를 확보하려던 성시백의 간첩사건.
내용

성시백은 당시 ‘남로당’과는 별도로 김일성에게 직접 소속되어 남한에다 ‘남반부 정치위원회’를 조직하고 암약하였다.

그는 원래 중국공산당 당원이었으나 1946년 12월 해로로 부산을 거쳐 국내에 잠입, 월북하였다가 1947년 5월서울에 재잠입하였다. 조선공산당에 소속되지 않은 신분으로서 서울시 서대문구 서소문동에 본거지를 두고 활동을 개시하였다.

1948년 2월 남북교역이 금지될 때까지 무려 56차에 걸쳐 명태와 카바이드 등 총액 1억 원이 넘는 물자를 반입하여 정치공작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였다.

성시백은 남북교역의 길이 막히자 1949년 6월 중국 칭다오(靑島)에 주재하는 북로당 직영 ‘조선상사’로부터 미화 6,100달러를 반입한 것을 비롯하여, 같은 해 12월부터는 밀수선 금비라호(金比羅號)로 중국과 밀무역을 하여 미화 2만 달러와 수백만 원의 견직물을 반입하였고, 1950년 3월에는 미화 1만 2000달러를 들여오는 등 총액 3만 9000달러의 공작금을 마련하였다.

또한 김일성으로부터 직접 밀령을 받아 《조선중앙일보》와 《우리신문》 등의 언론기관을 경영하면서 합법적으로 그들의 주의 및 주장을 암암리에 선전하는 한편, 국군의 기밀을 탐지하여 북한군의 남침 및 유격작전에 이바지하였다. 또한 프락치를 투입하여 대한민국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정치공작에도 열중하였다.

1948년 때에는 김일성의 지시를 받아 적극적인 총선 방해공작을 폈다. 그러나 1950년 5 · 30총선에서는 합법 · 비합법의 양면공세를 취하기로 한 공산당 노선에 따라서 공산당원의 입후보를 적극 지원하고, 5 · 10총선을 보이코트했던 ‘남북협상파’의 입후보를 유도하며 선거자금을 공급하였다.

그는 당시 민주국민당 소속 김승원(金升元)에게 85만 원의 선거자금을 공급하고, 더 나아가 남북협상파로서 입후보한 국내 중진들인 조소앙(趙素昻) · 장건상(張建相) · 박건웅(朴健雄) · 김성숙(金星淑) · 김붕준(金朋濬) · 김찬(金燦) · 유석현(劉錫鉉) · 윤기섭(尹琦燮) 등을 포섭대상자로 선정하여 김승원에게 미화 1만 달러를 공급, 적극적으로 정치공작을 펴던 중 총선 15일 전인 5월 15일에 수사기관에 붙잡혔다. 이 사건으로 연루되어 검거된 사람은 112명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북괴도발삼십년사』(북한연구소, 1978)
집필자
백봉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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