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집권당인 조선로동당의 전신으로서,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 10일 창립된 ‘조선공산당 북부조선분국’이 북조선공산당으로 발전하면서 무산계급의 정당을 자처하게 되었고, 1946년 1월에 성립된 연안계 공산주의자를 중심으로 한 일종의 쁘띠 부루조아 정당인 북조선신민당이 북조선공산당과 8월에 합당하여 북조선로동당이 탄생하였다. 이때부터 1949년 6월 북조선로동당(북로당)과 박헌영의 남조선로동당(남로당)이 합당하여 조선로동당을 성립시킬 때까지의 기간 동안 북한의 정치를 주도했던 정당이 바로 북조선로동당이다.
해방 후 북한에는 공산당과 다른 근로자당이 존재하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근로대중을 분열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었으며, 혁명투쟁이 전진함에 따라 그것은 근로대중의 행동통일에 지장을 주기 시작했다. 김일성(金日成)은 공산당을 조선신민당(朝鮮新民黨)과 합당하여 근로인민의 대중적 정당으로 발전시킬 데 대한 독창적인 방침을 제시하고 기층조직들의 합당사업을 끝마친데 기초하여 ‘북조선로동당창립대회’를 소집하였다.
북한은 조선공산당이 1925년에 창건되었다고 주장하면서도 조선공산당 서북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가 개최된 1945년 10월 10일을 조선로동당 창건일로 공식화하여 1949년부터 ‘사회주의 명절’로 기념하고 있다.
북한은 이 대회에서 채택한 ‘정치노선과 조직강화에 관한 결정서’에 따라 10월 13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창설하였다.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은 1946년 4월 말에 북조선공산당으로 되었다가 8월 29일에는 중국 연안으로부터 돌아온 조선독립동맹 계열이 중심이 된 조선신민당과 합당하여 북조선로동당으로 발족되었다. 또한 북조선로동당은 1948년 8월 정권수립을 위하여 남조선로동당과 연합중앙위를 구성하고, 이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범후 1949년 6월 30일에 조선로동당으로 통합되었다.
조선로동당이 북한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고리는 국가기관과 근로단체들, 그리고 군(軍)에 대한 직접적인 지도와 감독이다. 당은 정치·군사·경제의 중요한 부분에 정치기관 등을 두어 해당 기관들을 직접 감독하고 있다. 북한의 정치과정에서 행정·입법을 망라한 모든 국가기관들은 당과 인민대중을 연결하는 가장 포괄적인 지위를 갖는 것으로 규정되고 있다. ‘조선직업총동맹’·‘농업근로자동맹’·‘조선민주여성동맹’·‘조선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등 4개의 근로단체 역시 자본주의 사회의 이익단체와는 달리 광범위한 대중의 사상·교양 조직으로서 당과 대중을 연결하는 고리로 규정되고 있다. 한편 당의 혁명적 무장력으로 규정되고 있는 ‘조선인민군’에 대한 당의 감독과 지도는 당 군사위원회와 당 중앙위원회 직속인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조선로동당의 이념과 목표는 역대 당 대회를 거치면서 수정을 거듭해왔다. 북한정권 창립 이전에 개최된 1, 2차 당 대회에서 채택한 「조선로동당 규약」은 당의 이념을 명시하지 않은 채, 독립국가 건설과 인민대중의 정치·경제·문화 생활 수준의 향상을 당의 목표로 제시하였다.
그러다가 1956년 4월에 열린 제3차 당 대회에서 「조선로동당 규약」 제1조를 개정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당 활동의 최고 지침으로 제시하였다. 또한 조선로동당을 “민족적 독립과 해방을 위하여 투쟁한 조선 인민의 혁명적 전통 계승자”로 규정하면서, ‘전국적 범위에서 반제·반봉건적 민주혁명의 과업 완수’를 당의 당면 목적으로, ‘공산주의 사회건설’을 최종목적으로 내세웠다.
1961년 9월 제4차 당 대회에서는 당의 이념 및 목표에서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으나, 1970년 11월 제5차 당 대회의 당 규약 개정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함께 김일성 주체사상을 당의 지도이념으로 표방하는 변화를 보였다.
1980년 10월 제6차 당 대회에서는 김일성 주체사상만을 당의 유일한 지도이념으로 명문화하고 ‘온 사회주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사회건설’을 당의 최종목표로 내걸었다. 한편 북한은 내부사정으로 제6차 당 대회 이후 현재까지 당 대회를 개최하지 못하고 있다.
조선로동당의 조직·운영은 당원의 합의보다는 수령을 정점으로 한 소수집단의 하향식 지시에 따른 운영체계로 점차 바뀌면서 김일성 1인 지배를 위한 제도적 보장장치로 기능해 왔다. 조선로동당 발족 초기에는 당대회와 당중앙위원회가 주요 권한을 행사해 왔으나, 1956년 제3차 당 대회 이후부터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의 권한이 커졌으며, 1966년 10월 당중앙위원회에 ‘비서국’이 신설되면서 당의 운영이 김일성의 지시를 받는 비서국 중심체제로 전환되었다.
또한 1980년 제6차 당 대회에서 개정된 당 규약에 따라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를 ‘정치국’으로 바꾸고 그 안에 ‘상무위원회’를 신설해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였다.
조선로동당 발족 초기에 당 대회는 매년 1회,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3개월에 1회씩 개최하는 것으로 규정하였으나, 현재는 제6차 당 대회에서 개정된 당 규약에 따라 당 대회는 5년에 1회,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6개월에 1회 이상 소집하며, 필요에 따라 규정된 기간보다 빨리 또는 늦게 소집할 수도 있게 규정되어 있다.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은 창설 초기에 4,530명의 당원을 가진 전위조직으로 출발하였다. 그 후 1946년 8월 북조선로동당 창립대회 개최 시 조선신민당과의 합당을 계기로 당원의 급속한 증가를 보인 이래 1952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 때에는 100만 당원을 확보하고, 약 5만개의 세포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6·25전쟁 기간 중 출당과 전사 등으로 인한 당원 감소에도 불구하고 1950년 7월부터 1952년 11월까지의 당원 수는 오히려 45만 명이나 증가하였으며, 당시 신입당원이 전체당원의 40%나 될 정도로 대규모의 당원증가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같은 당원의 대량증가는 자연히 질적 저하현상을 가져왔다. 당시 신입당원의 반 이상이 문맹자로 당원들에 대한 정치사상 교양사업의 강화가 가장 큰 과제로 대두되었다. 북한은 1961년 9월에 개최된 제4차 당대회 시 당원 수 1,311,563명, 당세포 수 65,000개로 공식 발표한 이후 지금까지 당세에 관한 공식통계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1980년 10월 제6차 당 대회에 참가한 당대표 중 결의권 대표수와 결의권 대표의 선출 비율을 감안하면 당시 당 원수는 대략 32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또한 이를 기준으로 1개 세포당 평균 당원수를 15명으로 계산할 경우 당시 당세포 수는 21만 개 정도 조직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94년 전국당세포비서대회(3월 31일~4월 1일) 및 조선로동당 창건 49주년 기념보고대회(10월 10일)에서 북한은 당세포 수를 막연히 ‘수십만 개에 이른다’고 한 것으로 보아, 1980년 이후 지금까지 상당한 당세의 확장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당원 수의 대폭 증가는 김정일의 권력기반을 공고화하기 위한 ‘3대혁명 소조원’ 등 전후 세대의 대거 입당과 산업구조 및 업무의 다양화로 각급 기관과 공장·기업소에 대한 당의 지도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당원 증가의 필요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로동당 규약」에 의하면 조선로동당은 ‘민주주의 중앙집권제 원칙’에 의하여 운영된다고 하여 외형상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당원은 당조직에 복종하고 하급 당조직은 상급 당조직에 복종하며, 모든 당조직은 당중앙위원회에 절대 복종하도록 되어 있어 실제로는 1당 지배체제를 제도화하고 있다.
각급 당조직은 지역 또는 생산 및 노동단위별로 조직되어 있다. 각급 당위원회는 각 해당 단위의 최고지도기관이 되며 ‘정치적 총참모부’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당위원회는 집단적 지도를 기본 활동지침으로 하고 있다.
당조직의 최고지도기관은 당대회이며, 당대회가 열리지 않을 때는 당대회가 선출한 당중앙위원회가 최고지도기관이 된다. 도(직할시)·시(구역)·군 당의 경우는 해당 당대표회가, 당대표회가 열리지 않을 때는 당대표회가 선출한 해당 당위원회가 최고지도기관이 된다. 초급 당조직의 최고지도기관은 당총회(당대표회)이며, 당총회가 열리지 않을 때에는 당총회가 선거한 해당 당위원회가 최고지도기관이 된다.
군대 내에도 각급 단위부대에 당조직이 설치되며, 군대 내 전체 당조직을 망라하는 인민군 당위원회가 당중앙위원회 직속으로 조직된다. 군대 내의 당위원회는 당중앙위원회의 비준을 받아 주둔 지역에 있는 각급 당위원회에 정치 및 군사 간부를 위원으로 추천할 수 있다.
당중앙위원회는 필요에 따라 주요 정치·경제·군사분야에 정치기관인 정치국(정치부)를 두고 있다. 정치국은 해당기관에 조직된 당위원회의 집행부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당의 기층조직은 당의 전투단위로 일컬어지는 당세포이다. 당세포는 당원 5~30명 단위에 조직되며, 특수한 경우에는 예외를 두고 있다. 당세포의 상급조직으로 초급당 조직이 있으며, 이 위원회는 당원 31명 이상의 단위에서 조직된다.
각급 당위원회 전원회의는 해당 당위원회의 위원과 후보위원 3분의 2 이상의 참가로 회의가 성립되며, 회의의 결정은 참석자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채택된다. 당 회의에서 채택된 제반 정책은 비서국(지방은 비서처)에서 집행되고 있다. 중앙위원회의 비서국에는 사상담당 등 분야별로 통상 10명 내외의 비서를 두고 있다. 당의 기층조직인 초급당위원회와 당세포에는 비서와 부비서가 있다.
당간부의 자질 향상과 효율적인 인력관리를 위해 각급 당위원회는 간부양성 및 재교육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당의 교육기관으로는 시(구역)·군당의 부장급 이상을 입교대상으로 하는 김일성고급당학교가 중앙에 있으며, 각 도에는 공산대학, 각 군에는 군당학교가 설치되어 있다. 김일성고급당학교에는 1개월부터 5년까지의 다양한 교육과정이 있다.
모든 당간부들은 해마다 정기적으로 가급 재교육기관에서 적어도 한달씩 교육받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당시 노선과 정책을 선전하기 위한 보도·출판 매체로 ‘로동신문사’와 ‘조선로동당출판사’가 있다. 이들은 당원들과 일반주민에 대한 사상교육과 함께 당의 정책관철을 위해 주민들을 조직, 동원하는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조선로동당의 위상과 역할은 ‘혁명의 참모부’로 출발하여 “수령의 사상과 영도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무기이며 혁명의 참모부”가 되었다가, 다시 “수령과 수령의 후계자의 사상과 영도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무기이며 혁명의 참모부”로 되었다.
조선로동당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다른 모든 조직들을 통일적으로 지도하는 최고형태의 조직(Including the Army)이자 혁명과 건설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모든 사업을 조직 지휘하는 혁명의 참모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