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주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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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가사 / 장진주사
송강가사 / 장진주사
고전시가
작품
조선 중기에 정철(鄭澈)이 지은 사설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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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정철(鄭澈)이 지은 사설시조.
내용

조선 중기에 정철(鄭澈)이 지은 사설시조. 『송강가사(松江歌辭)』 및 『문청공유사(文淸公遺詞)』에 실려 전하며, 『청구영언(靑丘永言)』 · 『근화악부(槿花樂府)』 등 각종 가집(歌集)에도 널리 수록되어 있다.

『순오지(旬五志)』에는 이 노래가 이백(李白) · 주1의 명시인 「장진주(將進酒)」를 본받았다 하고 두보(杜甫)의 시에서도 뜻을 취하였다 하였다. 그러나 거기에서 소재와 시상을 취하였을 뿐, 독창성과 개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이 노래는 『송강가사』에 실려 있다는 점과 가집에 노래 제목이 붙은 채 독립적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가사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볼 수만도 없는 것이 「장진주사」는 주2의 정형을 일탈하면서도 3장 구성체계라는 주3의 구조적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한다면 사설시조로 봄이 옳다.

즉, 초장(한 盞 먹새그려∼無盡無盡 먹새그려)의 음보수가 동일하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경향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이는 시조창에서의 초장에 해당하는 것을 가곡창에서는 두 장으로 나누어 부르게 된 데서 생기는 경향이다. 또한 3장 가운데 대체로 중장(이 몸 주근 後면∼먹쟈 ᄒᆞᆯ고)이 길어지는 경향도 아울러 보이고 있어, 사설시조의 형식적 특성을 온전히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게다가 진본(珍本) 『청구영언』 등의 가집에서 가곡창이나 시조창으로 연행하는 자료들 틈에 함께 소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장진주사」에 화답(和答)한 것으로 보이는 후대의 시조작품(空山木落 雨蕭蕭ᄒᆞᆫ듸∼어즙어 昔年歌曲이 郞今調가 ᄒᆞ노라)에서도 본 작품을 ‘가곡’이라 칭하고 있어 가곡창이나 시조창으로 불렸을 것은 더욱 확실시된다.

결국 이 노래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초 · 중 · 종장 모두 평시조의 틀에서 일탈하였으되, 중장에서 특히 길어지는 사설시조의 보편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하겠다.

「장진주사」는 내용의 측면에서 본다면 권주가(勸酒歌)로 분류된다. 인생이란 허무한 것이니 후회하지 말고 죽기 전에 술을 무진장 먹어 그 허무함을 잊어버리자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몸 죽은 後후면 지게 우ᄒᆡ 거적덥허 주리혀 ᄆᆡ여가나, 流뉴蘇소寶보藏쟝의 萬만人인이 우러녜나” 마찬가지라, 죽으면 술 한 잔 먹자고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니, 꽃 꺾어 술잔 수를 세어가며 무진장 먹자고 한다.

초장은 반복법을 주로 사용하고 중장은 대조법과 병치법의 교묘한 조화에 의하여 표현의 묘를 살렸다. 전체적으로 암울한 분위기에 걸맞는 소재를 선택해서 인생의 허무함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고사성어나 한문 조어를 피하고 우리말의 일상적 생활어를 시어로 선택함으로써 시대를 넘어서는 문학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백의 「장진주」가 남성적인 호방함을 보임에 비하여 이 작품은 여성적인 우수(憂愁)의 감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대조적이며, 서정성과 낭만성이 교차하고 있다.

참고문헌

『순오지(旬五志)』
『송강가사(松江歌辭)』(성주본·이선본·관서본·별집(星州本·李選本·關西本·別集)
「정송강(鄭松江)의 장진주사(將進酒辭) 연구」(홍재휴, 『대구교육대학논문집』, 1969)
주석
주1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790~816). 자는 장길(長吉). 시작(詩作)에 몰두하여 15세 때에 그 이름이 알려졌으며, 몽환적인 인상과 기이한 분위기의 시로 귀재(鬼才)라는 평을 받았다. 작품에 시집 ≪이하가시편(李賀歌詩篇)≫, ≪창곡집(昌谷集)≫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2

삼장 형식으로 이루어진 가장 기본적이고 대표적인 시조. 초장이 3ㆍ4ㆍ3(4)ㆍ4, 중장이 3ㆍ4ㆍ4(3)ㆍ4, 종장이 3ㆍ5ㆍ4ㆍ3조로, 글자는 모두 45자 안팎이며, 각 장은 4음보로 이루어진다.    우리말샘

주3

초장ㆍ중장이 제한 없이 길며, 종장도 길어진 시조. 조선 중기 이후 발달한 것으로, 산문적 성질을 띠며 서민적 내용이 담겨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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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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