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전(許㙉)이 지은 「고공가(雇工歌)」에 화답한 가사이다. ‘고공답가(雇工答歌)’라고도 한다. 임진왜란을 겪은 뒤 명신이던 이원익이 지었다 하며, 순조 때 필사된 것으로 보이는 『잡가(雜歌)』라는 노래책에 실려 전한다.
「목동문답가(牧童問答歌)」·「만언사(萬言詞)」·「사녀승가(思女僧歌)」 등과 함께 문답가 계열의 가사에 해당된다. 「고공가」에 화답하는 노래답게 비유적인 표현방법을 주로 썼으며, 제재와 주제, 문체와 기교 등에서도 상응하는 수법을 택하였다.
이 작품은 한 국가의 살림살이(체제와 형편)를 농사짓는 주인과 종의 관계를 통하여 제시한 것이다. ‘게으르고 헤아림 없는 종’에게 왜 ‘마누라’의 말씀을 듣지 않느냐고 비난하고, 이어서 ‘마누라’에게는 ‘어른 종’을 믿으라는 요지를 담고 있다.
여기서 ‘게으르고 헤아림 없는 종’은 나랏일에 태만한 신하, 곧 허전이 「고공가」에서 비난한 바 있는 그런 부류의 신하들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고, ‘마누라’는 선조를, ‘어른 종’은 작자 자신을 포함한 당대의 고관들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즉, 조선의 백성이 천하에 으뜸인데, ‘드난 종’ 곧 벼슬을 하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하는 신하들이 텃밭을 묵혀놓은 채, 밥만 먹고 정자 아래서 낮잠만 자느냐고 하면서 그들의 태만함을 꾸짖는다.
그 다음, ‘소먹이는 아이들’ 곧 지방관청의 이속들이 ‘마름’ 곧 지방관청의 수령들을 능욕하니, 한 집 곧 나라의 숱한 일들을 할 자가 없음을 탄식한다. 그리하여 곡식창고는 비게 되고 세간은 흩어지고 살림은 말이 아니게 되었다고 탄식한다. 곧 나라의 형편이 궁핍화된 현실을 한탄한 것이다.
거기에다가 ‘외별감’·‘외방마름[外方舍音]’·‘도달화(都達花)’ 등 곧 변방을 지키는 무관들마저 맡은 임무에는 소홀하고 제 몸만 사리고 있으니, 누가 힘써 나라를 방어할 것인가! 임진왜란의 상처로 크게 기운 집주인, 곧 선조는 밤낮 근심 속에 편할 날이 없다.
이는 ‘헤아림 없는 종’ 곧 몰지각한 신하들 탓도 있겠지만, ‘마누라’ 곧 임금님 탓이 더 크다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집안 일’ 곧 나랏일을 고치려거든 ‘종’들 곧 신하들을 휘어잡아 상벌을 밝히고, ‘어른 종’ 곧 작자를 포함한 정승·판서 등을 믿어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면 ‘가도(家道)’ 곧 나라의 형편과 도리가 저절로 일어날 것이라는 충언(忠言)을 담은 것이다.
「고공가」에는 나라가 기운 원인을 신하들의 직무태만으로 단순하게 보았으나, 이 작품은 사태를 보다 자세하게 분석한 다음, 신하들의 충간(忠諫)만 들어준다면 해결이 가능하다는 자부심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