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가 ()

잡가 / 고공가
잡가 / 고공가
고전시가
작품
조선 중기에 허전(許㙉)이 지은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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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허전(許㙉)이 지은 가사.
구성 및 형식

순조 때 필사된 것으로 보이는 『잡가(雜歌)』라는 노래책에 실려 있다. 작품 전체는 110행이다. 이 작품은 임진왜란 직후에 선조가 지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왔으나,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에 의하면 이는 잘못 전해진 것이고, 실제의 작자는 허전(許㙉)이라고 한다.

작자는 고공(雇工), 즉 머슴을 내세워 당시 국록을 먹는 신하들의 부패상을 우의적(寓意的)으로 고발함으로써 이를 개선하려는 충정을 펴고자 하였다. 따라서, 이 작품에는 교술적 성격이 농후하다.

내용

내용은 처음의 한 어버이가 나라를 연 이래, 여드레갈이의 살림살이를 차려 놓고 인심을 많이 베풀어 국초(國初)의 머슴들은 모두 부지런하고 검소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머슴들은 밥 사발의 크고 작음과 의복의 좋고 나쁨을 다툴 뿐, 얼마 전에 화강도가 쳐들어 와 집안 재물을 모두 망쳐 놓았는데도 합심협력해서 농사를 지으며 도둑을 막을 생각은 않고, 화살을 방치해 두고 의복과 먹는 것만 다투고 있다. 그런 현실을 개탄하다 보니 어느새 새끼 한 사리를 다 꼬았다는 것이다.

의의와 평가

작품에 나타난 우의를 살펴보면, ‘처음의 한 어버이’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李成桂)를 우의한 것이고, ‘여드레갈이’는 조선의 팔도를, ‘고공’은 조정의 신하들을, ‘화강도’는 임진왜란 때 쳐들어 온 왜적을, ‘여름짓기’ 곧 ‘농사’는 국사(國事)를, ‘밥 사발’은 나라에서 주는 녹봉을 각각 우의한 것이다. 이처럼 작품 전편이 우의적 수법으로 짜여 있다는 데 특색이 있다.

작자는 임진왜란의 참화로 유교적 이상이 깨어진 비참한 현실에 직면하여, 이러한 현실을 성실하게 수습하려 들지 않는 신하들의 나태한 모습을 애달픈 심정으로 표현하였는데, 이러한 비극적 감정의 이면에는 유교적인 이상 사회를 재건하려는 숭고한 의지가 내재되어 있다. 이원익(李元翼)은 「고공답주인가(雇工答主人歌)」를 지어 이 노래에 화답하였다. → 고공답주인가

참고문헌

『한국가사선집』(이상보, 집문당, 1979)
「고공가해설」(김동욱, 『문학춘추』창간호, 1964)
「고공가 및 고공답주인가에 대하여」(김동욱, 『조윤제박사회갑기념논문집』,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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