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오지』는 조선 후기 문신·학자 홍만종이 고사일문, 시화, 양생술, 삼교합론, 속언 등을 수록하여 1678년에 저술한 잡록이다. 열흘 만에 지어서 『십오지』라고도 한다. 36세(1678)에 지었으나 간행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만 전해졌다. 홍만종은 자서에서 옛날에 들은 여러 가지 말과 민가에 떠도는 속담 등을 기록하였다고 밝혔다. 상권에는 고사일문, 시화, 양생술이 수록되었다. 하권에는 유현, 도가, 불가, 삼교합론, 문담, 문집, 별호, 속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순오지』는 관인문학에서는 묻혀버리기 쉬운 사실들을 찾아 기록한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순오지』의 상권에는 고사일문(古史逸聞) · 시화 · 양생술, 하권에는 유현 · 도가 · 불가 · 삼교합론(三敎合論) · 문담 · 문집 · 별호 · 속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따로 제목이 붙여져 있지는 않다. 그러나, 하나의 단락을 시작하고 맺을 때에는 서(序)와 결(結)에 해당하는 말로써 알아보기 쉽게 전개하였다.
『순오지』의 첫머리에 단군의 사적을 여러모로 들었다. 단군의 신이한 통치가 우리 역사의 출발이고, 단군이야말로 ‘동방 생민(生民)의 비조’라고 하는 고대사의 기본인식을 보여준다. 우리의 역사가 오랜 연원을 가지고 줄기차게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그 뒤에도 신이한 행적이 계속되었다는 것을 밝혀 민족적 자부심의 근거로 삼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해석하였으므로 우리 문화도 주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중국문화의 유입이 문화발전을 결정하였다는 중화주의적 사고방식을 극복하였다.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마다 우리 선조들이 단군 이래의 굳건한 정신을 발휘하여 물리친 것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고구려가 중국의 침략을 당당히 물리치고 국력을 크게 떨쳤던 사실을 감격스럽게 서술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선조들의 기상을 잃고 해마다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통탄하였다.
또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나서도 근본적인 각성을 하지 못하고 기강이 해이해져 있는 것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을 하였다. 글만 숭상하고 실질을 저버리는 사고방식의 유학의 헛된 명분론을 거부하고 고구려시대의 실질적이고 전투적인 기상을 계승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순오지』에 실려 있는 시화는 모두 20여 항목이다. 전반부는 주로 대우(對偶), 후반부는 해학을 곁들인 시일화(詩逸話)로 되어 있다. 역대의 문장가와 시인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와 중국사신들과 문장실력을 겨루던 대구문답(對句問答)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진복창(陳復昌)의 「역대가(歷代歌)」, 조식(曺植)의 「권선지로가(勸善指路歌)」, 정철(鄭澈)의 「관동별곡」 등 우리말로 된 장가 14편을 소개하였다. 먼저 작품명을 들고 작자를 말한 뒤 내용을 설명하고 작품에 대한 평가를 하였다. 평가는 간결하면서도 작품 위주의 평을 하고 있어서 비평의 의의를 부각시켰다.
『순오지』는 유 · 불 · 선 삼교에 대한 해박한 논설을 펼쳤다. 그 중에서도 도가에 대한 내용이 많다. 조선 태조의 건국설화 중 풍수에 능하였다는 도선(道詵)의 이야기에서부터 당시 우리나라 지명에 얽힌 전설과 신선술, 또는 양성보명(養性保命)과 입신행기(立身行己)의 비법을 소개하였다.
이것은 많은 신이담과 민중적 영웅의 행적을 통하여 자기 시대 사람들의 나약하고 해이해진 풍조를 극복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순오지』에는 영웅적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신선수련법까지도 필요하다고 보아 단전호흡을 비롯한 여러 가지 비법을 기록해두었다.
도교를 일컬어 단학(丹學)이라고도 하였다. 단학에 대한 이적(異蹟)이 있는 것을 모아 『해동이적전(海東異蹟傳)』을 써 40명을 수록했다고 하고 그 인명과 출전을 밝혔다. 『순오지』의 끝 부분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속담이 한문으로 번역되어 있고, 각 속담의 뜻풀이를 함께 싣고 있어 조선시대 속담의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두더지의 혼인’ · ‘고양이목에 방울달기’ 등에는 유래담도 실어 설화의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순오지』는 내용이 다양한 방면에 걸쳐 있다. 그러나 주된 관심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학에 있고, 우리 민족에 대한 당당한 긍지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관인문학(官人文學)에서는 묻혀버리기 쉬운 사실들을 찾아 기록한 점에 이 책의 큰 의의가 있다. 1980년 태학사에서 『홍만종전서』를 영인, 간행할 때 포함되었다. 이보다 앞서 1971년 을유문화사(乙酉文化社)에서 펴낸 번역본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