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에 나타난 최초의 속담(俗談)은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에 “내 일 바빠 한댁 방아를 서두른다[己事之忙大家之舂促].”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속담’이라는 말을 쓴 것은 아니고, ‘기사지망(己事之忙)’ 위에 ‘이언(俚諺)’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 뒤 조선시대에 이르러 중국어 학습 교재인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에 속담 대신 ‘상언(常言)’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또한 조선 중기 『어우야담(於于野談)』이나 『동문유해(同文類解)』 같은 문헌에 속담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속담을 엮은 자료가 등장한 것은 17세기 홍만종(洪萬宗)의 『순오지(旬五志)』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당시 유행하던 속담을 124수 가량 한역하여 싣고 있다. 이덕무(李德懋)도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62 『 열상방언(洌上方言)』 조에 100수 가량의 속담을 한역해 기록해 두었다.
조재삼(趙在三)은 『송남잡지(松南雜識)』 권5와 권6 ‘방언’ 항목에 많은 속담을 수록하고 이 가운데 사실과 다르게 전해져 생긴 오류도 직접 수정해 놓았다. 정약용(丁若鏞)은 『이담속찬(耳談續纂)』에 241수의 속담을 한역하여 수록하였다. 그밖에 편자 미상의 『동언해(東言解)』에도 422수의 속담이 한역되어 실려 있다.
최초의 국문 속담 사전은 1913년 신문관(新文館)에서 간행된 최원식(崔瑗植)의 『조선이언(朝鮮俚諺)』으로, 이 책에는 900여 수의 속담이 수록되어 있다. 1922년 동양서원(東洋書院)에서 간행한 김상기(金相冀)의 『조선속담』은 『조선이언』의 900여 수 속담에다 600여 수의 속담을 추가하여 모두 1,500여 수의 속담을 수록하고 있다. 1940년 조광사(朝光社)에서 간행한 방종현(方鍾鉉) · 김사엽(金思燁)의 『속담대사전』은 본격적인 속담집으로 총 4,000여 수의 속담을 싣고 있다.
해방 후 1948년 정음사(正音社)에서 발간한 김원표(金源表)의 『조선속담집』에는 700여 수의 속담이 실려 있다. 1959년 제일프린트사에서 인쇄한 진성기(秦聖麒)의 『제주도속담』은 한국 최초의 지방 속담집으로, 총 400여 수의 속담이 수록되어 있다.
1962년 경학사(耕學社)에서 간행한 『속담사전』에는 1,256수의 속담이 수록되어 있다. 1962년 민중서관에서 발간한 이기문(李基文)의 『속담사전』은 한국 속담집 가운데 항목이 가장 많은 것으로, 총 7,000여 수의 속담이 수록되어 있다. 이 사전은 속담의 출전과 함께 속담의 용례를 풍부하게 수록하고 있다.
이밖에 신창순(申昌淳)이 「신채속담(新採俗談)」을 통해 600수의 속담을 발표한 바 있으며, 김선풍(金善豊)이 「신채언어(新採諺語)」를 통해 380수의 속담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새 속담 새 겹말」이라는 글을 통해 348수의 속담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1970년대에는 한국민속학회에서 『한국속담집』(서문당)을 발간했으며, 1980년대에는 송재선(宋在璇)이 『우리말속담큰사전』(서문당, 1983)을 펴내기도 하였다. 1990년대에는 동문선(東文選)에서 펴낸 『상말속담사전』(1993) · 『여성속담사전』(1995) · 『동물속담사전』 · 『주색잡기 속담사전』(1997) 등은 소재별 속담 사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 1993년 정종진이 태학사에서 간행한 『한국의 속담』은 현대 소설이나 수필, 희곡 텍스트 가운데에서 8,500항목 정도의 예문을 뽑아 속담을 소개한 속담 사전이다.
속담은 예부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짧은 문장의 비유적 말로, 경험을 통해 얻게 된 삶의 지혜와 교훈, 경계해야 할 일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의 말은 대체로 특정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특별한 문화적, 사회적 관념과 태도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속담은 속설(俗說), 속언(俗諺), 이어(俚語), 이언, 세언(世諺)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모두 세상에서 전해 내려오는 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 전문가나 특정 계층에 의해 만들어진 말이 아니라 다수 대중에 의해 오랜 세월 전승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통속적인 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이 말은 전통과 관습을 표현하는 동시에 시대를 관통하여 지속적으로 의미 효과를 드러내는 세상살이의 통념적 가치와 경험을 통해 습득된 지혜와 경계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속담은 구술 전승되면서 어느 정도 굳어진 일종의 관용적 어구라고 할 수 있는데 관용어구에는 속담 이외에도 격언이나 잠언류의 말, 수수께끼, 속신(俗信)과 금기(禁忌)에 관한 말 등이 있다. 속담은 다른 관용어구와 달리 비유의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이 비유는 때로 풍자나 해학의 효과를 동반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속담(俗談)’이란 말이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기 『어우야담』이나 『동문유해』 같은 책이지만 실제로 속담이 쓰인 예는 그보다 훨씬 앞서 발견된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의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念佛西昇)’이라는 조항에 ‘내 일 바빠 한댁 방아를 서두른다[己事之忙大家之舂促].’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속담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삼국시대에 이미 상당수의 속담이 일반화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속담의 발생은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특정한 역사적 사례에 대한 묘사로부터 형성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일상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반 사례에 대한 묘사로부터 형성되는 경우이다.
많은 속담은 일반 사례의 묘사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반복되는 특수 사례라고 해석할 수 있으므로 근원적으로는 특정한 역사적 사례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음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적 인물이나 문학 작품 속 인물, 그리고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는 지역, 또는 벼슬의 이름이 등장하는 속담이 다수 존재한다. 이렇게 특정한 고유 명사가 언급되는 것은 그 인물이나 사건이 이미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며, 이 인물과 사건을 통해 특별하게 환기되는 관습적 의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 황정승(黃政丞)네 치마 하나 세 모녀가 돌려 입듯 ○ 한상국(韓相國)의 농사짓기 ○ 고수관(高守寬)의 딴전피기 ○ 변학도(卞學道) 잔치에 이도령(李道令)의 밥상 ○ 운봉(雲峰)이 내 마음을 알지 ○ 조자룡(趙子龍)이 헌 칼 쓰듯 ○ 장비(張飛)는 만나면 싸움 ○ 송도(松都) 말년(末年)에 불가살이 ○ 양천현감(楊川縣監) 죽은 말 지키듯 ○ 아산(牙山)이 깨어지나 평택(平澤)이 무너지나 ○ 평양감사(平壤監司)도 저 싫으면 그만
어떤 표현이 하나의 속담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대체로 속담은 하나의 비유적 발언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처음부터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기발한 착상에서 나올 수도 있고 그저 우연히 어떤 사건을 묘사하고 서술하는 과정에서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비유의 말이 새로운 사례에 다시 적용될 때 그것을 이해한 언어 대중이 그 묘사의 적절함에 경이와 쾌감을 느껴 크게 공감을 하지 못하면 그 말은 속담으로 정착하지 못한다. 또 공감이 되었다 해도 그 말이 속담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전승의 과정을 거치면서 다듬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하나의 말이 속담이 되기 위해서는 그 말이 다시 인용될 가치가 있을 만큼 보편적인 의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즉, 처음 사용되었을 때보다 더 다듬어지면서 공감을 느끼는 언어 대중에 의해 거듭 인용되었을 때 그것은 속담의 자격을 갖추고 언어 사회에 정착한다. 이 과정을 요약하면 ① 특수 사례의 발생, ② 그 사례의 묘사, ③ 그 묘사의 다듬어짐, ④ 언어 대중의 공감과 다시 인용함, ⑤ 어구의 고정화와 전파 등의 다섯 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이 다섯 단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은 속담이 애초에 개인적 · 구어적(口語的) · 특수적인 것에서 출발하지만 나중에는 사회적 · 문어적(文語的) · 일반적인 것에 귀결됨으로써 그 언어 사회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얼굴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형성과 정착의 과정을 거치면서 속담은 부분적인 변개(變改)를 일으키기도 하고, 그 내용이 엉뚱한 뜻으로 바뀌기도 한다. ‘황정승의 곯은 계란’이란 속담은 ‘계란유골(鷄卵有骨)’이란 한자 표현을 거쳐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굴원(屈原)이 제 몸 추듯’은 ‘구렁이 제 몸 추듯’이란 중간 단계를 거쳐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란 엉뚱한 속담으로 바뀌게 되었다.
앞의 속담 가운데 ‘계란유골’은 ‘골(骨)’이란 글자의 음차(音借) 표기가 뜻풀이로 바뀌면서 변개가 일어난 예라고 할 수 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은 중국 고대의 시인 굴원이 누구인 줄을 모르는 언어 대중이 ‘굴원’을 비슷한 소리의 ‘구렁이’로 잘못 발음하면서 변개가 일어난 예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속담은 전근대적 생활 양식과 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과거에 생성된 것이기에 현재에는 생성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지금 이 순간에 만들어진 속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크게 잘못된 표현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직 정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정된 어구로 정착하지 않았거나, 언어 대중의 인용 사례가 드물고 공감의 폭이 넓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속담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어구는 유행 어구의 성격을 띤 채 세상에 널리 퍼지며 분명하게 존재한다. 가령 20세기 초반에 발생한 속담 가운데 현재 어느 정도 정착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의사와 변호사는 나라에서 낸 도둑놈’이라는 말이 있다. ‘중매 반 연애 반’ 같은 말도, 어떤 사건에 자의(自意)와 타의(他意)가 반씩 섞여 있는 경우를 나타내는 속담으로 어느 정도 정착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속담의 형태는 짧은 형과 긴 형의 두 가지로 나뉜다. 짧은 형은 대체로 복합 개념을 나타내는 어구나 단문(單文)으로 구성되며, 긴 형은 중문(重文) 또는 복문(複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속담의 형태를 결정짓는 두 가지 요인은 운율적(韻律的) 조화와 통사적(統辭的) 구성이다. 전자의 운율적 조화는 압운(押韻)과 율격(律格)의 두 가지 방법으로 성취된다. 압운에는 두운(頭韻)과 각운(脚韻)이 있고 그 밖의 운율적 특성으로 단어 반복이 있다. 다음의 예는 압운의 기교를 보이는 속담에 해당한다.
○ 신첨지 신꼴을 보겠다 ○ 지게 지고 제사 지내도 다 제멋 ○ 물어도 준치, 썩어도 생치 ○ 소는 소 힘, 새는 새 힘 ○ 가는 날이 장날 ○ 꿩 먹고 알 먹고 ○ 아이 치레 송장 치레 ○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 염불도 몫몫 쇠뿔도 각각
한국 속담에서 발견되는 율격은 한국 전통 시가의 기본 율격과 마찬가지로 4음절을 기본 단위로 하는 1음보의 중첩인 2음보와 그 갑절인 4음보로 나타난다. 다음은 이와 같은 율격을 보여주는 속담의 예에 해당한다.
○ 공든 탑이 무너지랴. ○ 무른 땅에 말뚝 박기 ○ 병신 자식 효도 본다.
통사적 구조를 드러내는 속담은 주로 중문이나 복문으로 구성된 것들이다. 양적으로 보면 전체 속담의 10% 안팎에 불과하지만 구조적 안정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속담의 가장 안정된 형태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다음의 예는 대구를 이루는 중문으로 구성된 속담들이다.
○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 좋은 일에는 남이요, 궂은 일에는 일가라. ○ 꿀 먹은 벙어리요, 침 먹은 지네라. ○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 입은 거지는 먹어도, 벗은 거지는 못 먹는다.
문학적 측면에서 볼 때 속담은 부분적으로 운율적 성격을 드러낸다는 점과 서사적 구성의 외형을 띠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속담은 대체로 8음절 형태가 가장 많고, 7음절이나 9음절로 된 것도 있지만 간결한 표현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10음절 이내의 어구로 이루어진 것들이 많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8음절의 속담은 대체로 음수율로는 4 · 4조의 특징을 드러내며, 음보율 면에서 2음보의 특징을 보인다. 4 · 4조 2음보의 속담 가운데는 좌우 대칭형의 구성을 띠는 경우가 많으며, 이밖에도 3 · 4조, 5 · 5조, 6 · 5조, 6 · 6조, 7 · 5조의 속담들이 존재한다. 그 구체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 동무 따라 강남 간다.(4 · 4조) ○ 자는 범 군침 주기(3 · 4조) ○ 금일 충청도 명일 경상도(5 · 5조) ○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6 · 5조) ○ 토끼 죽으니 여우 슬퍼한다.(6 · 6조) ○ 빚 보증하는 자식 낳지도 마라.(7 · 5조)
속담은 형식상 정제된 언어의 형태를 지향하기 때문에 ‘동네 북’, ‘그림의 떡’처럼 2음절 · 3음절 · 4음절로 간단한 형태의 어구들이 많지만 긴 속담 중에는 아래와 같은 것들도 있다.
○ 백년이 잠깐이요 만세(萬世)도 바쁜 것이요, 백이숙제(伯夷叔齊)와 도척(盜跖)이 양(羊)을 잃기는 마찬가지이니 당장에 한번 취하여 시비(是非)를 도무지 잊어버리니만 못하다.
짧은 문구로 구성된 속담 중에는 ‘눈 먼 사랑’이나 ‘옥에 티’처럼 1음보로 된 것도 적지 않지만 2음보가 지배적이다.
○ 안성 맞춤/안장 맞춤 ○ 아동 판수/육갑 외듯
이와 같은 속담의 길이는 민요의 2음보 1행 길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원시 민요에 가까운 형태를 띠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여러 음보로 구성된 것 중에는 아래와 같이 4음보로 된 속담도 있다.
○ 이마에 부은 물이/발뒤꿈치로 흐른다
속담이 이처럼 운율적 리듬을 취하는 것은, 짧고 간결한 표현 속에 정제된 의미를 담아내는 동시에 사람들의 입에 달라붙는 ‘말의 맛’을 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속담 중에는 아래와 같이 민요에 삽입된 형태로 전승되는 것들도 있다.
님아 님아 우리 님아 이제 가면 언제 올래 동솥에 삶은 밤이 꼭꼬 울면 다시 올래 고목나무 새싹 돋아 꽃이 피면 다시 올래
한편, 속담 중에는 서사적 구성을 띤 이야기 가운데 등장하는 것들도 있다. 속담이 이야기에 결부된 형태로 등장하는 것들 중에는 서사적 구성을 갖춘 이야기가 먼저 나오고 그 이야기의 주제와 핵심 의미를 담은 속담이 뒤에 이어 나오는 ‘선(先) 설화 후(後) 속담’의 형태를 띠는 것들이 있다. 이와는 달리 속담이 먼저 제시된 후 이에 관한 이야기가 잇따라 나오는‘선 속담 후 설화’의 형태를 띠는 것들도 있다. 아래 『순오지(旬五志)』에 전하는 ‘춘천 토목공’이라는 속담은 전자의 예에 속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와 함께 전해진다.
예전에 한 촌옹(村翁)이 자기 딸을 지극히 사랑하여 사위를 고르기 위해 시험을 치르고자 하였다. 그는 괴목(槐木)으로 만든 궤(櫃)에 쌀 55두를 넣어 두고 사람들을 불러모은 후 “아무라도 이 궤 이름과 그 속에 든 쌀 두 수(斗數)를 알아맞히면 그를 사위로 삼겠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소식을 들은 그의 딸이 몰래 어떤 바보 장사꾼에게 비밀을 알려주어 시험을 치르게 하였다. 그랬더니 바보 장사꾼이 예비 장인을 만나자마자 묻지도 않았는데 첫 인사로 “노목궤(櫨木櫃)에 쌀이 55두”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춘천 토목공’이라고 부르는 속담이 생겨나게 되었다.
속담을 먼저 제시하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형태의 것들도 있는데, 이런 예로는 ‘게도 구럭도 다 잃었다.’는 속담에 얽힌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송남잡지(松南雜識)』에 의하면 항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옛날 게라는 이름의 사람에게 아주 절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이름이 굴억이라 하였다. 그런데 게의 마누라가 굴억의 아름다움을 탐내어 같이 살기 위해 자기 남편을 독살했다. 그랬더니 굴억이 말하기를, "사나이는 마땅히 저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있으니 나도 친구 따라 죽겠노라"며 자살하고 말았다. 결국 그 독부는 남편도 굴억도 모두 잃게 되었다.
그러나 『송남잡지』를 쓴 조재삼(趙在三)은 ‘구럭’에는 ‘그물’이라는 뜻이 있으니, 이는 이미 존재하는 다른 뜻의 속담에 새로운 이야기가 덧붙어 전혀 다른 내용의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일 거라고 추측하였다. 이는 아마도 어부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속담으로, 게를 잡으러 갔다가 풍랑 등의 원인 때문에 게도 잡지 못하고 구럭도 잃어버린 상황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가지고 있는 전부를 잃어버렸다는 의미에서, ‘멧돝 잡으러 갔다가 집돝 잃었다.’는 속담 역시 같은 의미의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속담은 서너 개의 음절로 구성된 아주 짧은 형태의 것이라 할지라도 서로 상반된 의미의 말들을 붙여 새로운 의미를 강렬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상반된 이미지의 것들을 나란히 병치함으로써 의미의 강렬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 중의 빗([-머리]의 [+머리]) ○ 그림의 떡([-음식]의 [+음식]) ○ 늙은이 불량한 것([+점잖음]이 [-점잖음]) ○ 짚신에 분칠([-고귀함]에 [+고귀함])
위 예에서 '중의 빗'은 머리카락이 없는 중과 머리카락 없이는 아무 기능을 할 수 없는 빗을 나란히 병치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고 있다. '중의 빗'은 '가지고 있어봐야 아무런 쓸모가 없는 물건'을 은유하는 속담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두 의미의 어구를 병치하고 이를 통해 제3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 속담의 대표적인 수사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 빚주고 뺨맞기([손실1]하고 [손실2]) ○ 뛰는 말에 채찍질([속력1]에 [속력2]) ○ 바늘뼈에 두부살([연약함1]에 [연약함2])
위의 예들은 어떤 현상이 반복되는데,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나 가치가 가중되는 상황으로의 점진적 상승, 이른바 점층성(漸層性)을 구현하는 의미의 중첩이라고 할 수 있다. '엎친 데 덮친 격'과 같이 고난의 점층적 상황, 혹은 '뛰는 말에 채찍질'처럼 가속 위의 가속이라는 뜻을 드러내는 속담들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 무자식(無子息)이 상팔자(上八字)([-행복의 조건]이 [+행복의 조건]) ○ 말이 말을 만든다([언어1]이 [언어2])
위 속담들은 단순한 축자적 의미를 넘어선 화용론적(話用論的) 의미를 구현해내는 속담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속담은 ‘자식이 없어서 불행 중 다행’이라든가, ‘자식 가진 사람 부러워할 것 없다.’는 함축 의미(含蓄 意味)를 화용론적으로 구현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이 말을 만든다’는 속담은 ‘더 이상 논쟁을 벌이지 말자.’라든가 ‘말은 조심해야 한다.’는 함축적 의미를 드러낸다.
속담이 나타내는 비유는 그 언어 사회가 관습적, 또는 암시적으로 받아들이는 화용론적 함축 의미에 의해서 생명을 얻는다. 가령 ‘성부동(姓不同) 남’이라는 속담은 ‘성이 다르니까 친척이 아닌 타인’이란 동일률(同一律)의 명제를 표면 의미로 삼는다. 그러나 그 말 안에 담긴 뜻은 ‘남이기는 하지만 친척보다 더 다정한 사이’라는 것으로, 이 속담은 오히려 반어적(反語的) 표현으로 해석했을 때 그 의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속담은 세상살이의 통념과 지혜를 전하는 교화(敎化)의 기능을 지니면서 이 속에 날카로운 해학과 풍자(諷刺)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은 ‘가까운 데 있는 일을 잘 모른다.’라든가, ‘가까운 곳에 진실(또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뜻을 담은 속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너 자신, 혹은 너의 주변을 잘 살펴보거나 돌이켜보라.’는 뜻을 함의하거나 ‘가까운 사람이나 상황을 조심하라.’는 뜻을 함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곧 세상살이의 지혜를 전하는 동시에 어떤 일을 경계하는 교화의 의도가 담겨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지혜와 경계의 의미를, 속담이 언제나 무겁고 진중한 태도로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열두 가지 재주에 저녁거리가 없다.’는 속담은 재주는 많으나 막상 먹고 사는 데 필요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상황을 풍자하는 말로, ‘여러 가지 능력이 반드시 현실적 생활 수단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비효율적인 일에 빠져 정작 생계를 돌보지 못하는 무능력과 무책임함을 폄하하거나 비판하는 의미를 드러낸다.
그러나 속담이 전달하는 지혜와 경계의 뜻이 윤리적으로도 언제나 타당한 것은 아니다. 일의 가치를 반드시 효율성으로만 재단할 수 없는 것처럼, '장님 코끼리 만지듯한다.'는 속담은 신체적 장애에 대한 비하와 폄하의 시선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속담이 드러내는 교화와 풍자에는 윤리적으로 성찰되지 않은 사회적 통념이 담겨 있기도 하다.
속담을 구성하고 있는 어휘나 속담의 기본 의미를 면밀하게 들여다 보면 옛 사람들의 생활 문화, 생태 인식, 의식과 관념, 관습과 전통 등 민속적 차원의 다양한 의미와 현상들을 포착할 수 있다.
속담은 흔히 ‘상말’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속담이 표현하는 의미와 말의 수사들은 형이상학적이거나 엘리트적인 문화의 단면을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통속의 문화와 관념을 드러내는 경우가 더 많다. 속담을 '속언'이라고 부르거나 속된 말로 인식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백성들의 삶을 엿보고 이를 통해 정치적 교화의 한 단면을 가늠하기 위해 속담을 수집하여 정리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속담을 사자성어의 형태로 정리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이의봉(李義鳳)은 『동한역어(東韓譯語)』라는 책에 106종의 속담을 정리하여 그 가운데 66종을 사자성어로 표현하였다. 우리말로 된 속담을 한자성어로 정리한 것은 문식성의 문제에서 비롯된 현상이기도 하지만 우리말의 비속한 표현을 좀더 고아한 표현으로 바꾸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속담에는 개 · 똥 · 물 · 소 · 집 · 사람 · 밥 · 말[言語] · 발[足] · 떡 등의 낱말이 빈번하게 나타나는데 이 중에서도 ‘개’와 ‘똥’과 같은 말들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비속성을 속담의 주요 자질로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속담은 관념적 세계관을 표현하기보다는 일상의 사물과 현상에 빗대어 구체적 인식과 태도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속담은 ‘가축’ · ‘자연’ · ‘주거’ · ‘인륜’ · ‘음식’ · ‘언어’ · ‘신체’의 범주에 속하는 사물과 낱말들을 동원해 일상(日常)의 사물과 현상, 사건의 정황으로부터 위기에 대처하는 생활의 지혜나 세상살이의 통념적 관념, 재치있는 풍자 등을 담아내는 경우가 많다.
○ 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 ○ 잘 되면 충신, 못 되면 역적 ○ 양반 못된 것이 장에 가 호령 ○ 사모 쓴 도둑놈 ○ 대신댁 송아지 백정 무서운 줄 모른다. ○ 양반은 글덕, 상놈은 발덕
이런 속담들은 세상살이의 한 단면을 재치있게 드러내면서 이와 같은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권력 관계나 사회적 모순을 비판적으로 환기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 때문에 속담은 해학과 풍자를 드러내는 한편, 역설적이거나 반어적인 수사를 종종 동원하기도 한다.
속담은 마치 이런 것이 바로 삶의 보편적 진리라는 포즈를 취하며 어떤 통념적 인식과 태도를 드러내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이와 같은 통념들이 반드시 비판적 사고와 윤리적 성찰에 기초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속담에 담긴 통념은 특정 대상이나 계층에 대한 편견과 혐오의 시선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래 속담들은 중을 조롱하거나 신체적 장애를 폄하하는 표현이 등장하는 예에 해당한다. 이런 속담에 등장하는 장애는 결핍을 지시하는 의미를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 혐오의 정동을 표현하기도 한다.
○ 불알 차인 중놈 달아나듯 ○ 비 맞은 중놈 ○ 부처님 위해 불공하나? ○ 의뭉하기는 노전대사라.
○ 벙어리 냉가슴 앓듯 ○ 꿀 먹은 벙어리 ○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소경 삼 년 ○ 벙어리 마주 앉은 셈 ○ 벙어리 두 몫 떠들어댄다
○ 장님 단청 구경하듯 ○ 장님 문고리 잡기 ○ 눈 뜬 장님 ○ 장님 개천 나무란다 ○ 장님 등불 쳐다보듯
○ 귀머거리 귀 있으나마나 ○ 뇌성벽력은 귀머거리도 듣는다 ○ 귀머거리가 당나귀 하품 한다고 한다 ○ 장님이 귀머거리 나무란다
속담이 갖는 의의는 삶의 보편적 진리나 전통의 소중한 가치를 드러내기 때문이 아니라 속담을 통해 저층의 문화를 생동감 있게 관찰하고 통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는 대체로 그 문화를 향유하는 공동체 내의 내밀한 코드를 통해 전승되는 경우가 많아서 내부자의 위치를 전유하지 않은 채로는 문화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데, 속담의 경우 이런 문화의 내밀한 속살을 엿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