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훈은 일제강점기~현대에 일본군 소위, 대한민국 연합참모본부장, 육군사관학교 교장,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만주 건국대학 재학 중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동원되었다가, 광복과 함께 소위로 자동 전역하였다.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국방부 차관, 연합참모본부장, 육군사관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 당시 군의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다가 반혁명세력으로 분류되어 구금되었고, 1961년 9월 강제 예편당하였다. 1988년 국무총리에 취임하였고, 1990년 남북총리회담을 이끌었다.
1922년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만주국 건국대학에 재학하고 있던 도중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되었으며, 광복과 함께 일본군 소위로 자동 전역하였다. 이후 1946년 군사영어학교(軍事英語學敎)를 졸업하고 미군정청 통위부(統衛部)[^1] 이응준 감찰총감 보좌관으로 군대 생활을 시작하였다. 통위부 인사참모, 제1사단 12연대장, 육군본부 인사국장, 제2군단 참모장, 주미한국대사관 무관, 국방부 차관, 주2 본부장, 제6군단장, 육군사관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1년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 재직할 당시 5·16군사쿠데타가 발생하였다. 5월 17일 육군본부에서 쿠데타 주도 세력과 삼군 수뇌부 사이에 열린 회의에서 군의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고, 육사 생도를 군사 정변 지지 시위에 동원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결국 5월 18일 쿠데타 세력에 의해 '반혁명세력'으로 분류되어 구속되었다. 이후 1961년 9월 25일 육군 중장으로 강제 예편당하였고, 다음 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977년 귀국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장, 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장, 주영국 대사, 주로마 바티칸 교황청 대사 등을 역임하였다. 1988년에는 민주화합추진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다. 같은 해 4월 26일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12월 5일 국무총리에 취임하였다. 국무총리 재임 중이던 1990년 3차에 걸친 남북총리회담[9. 4.~7, 10. 16.~19, 12. 11.~14.]을 이끌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 운경재단 이사장, 유민재단 이사장, 철기이범석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등도 역임하였다. 2016년 사망하였다.
저서로 정옥태와 공저한 『군사법개론』[문왕사, 1977], 『Soviet deterrence doctrine』[서울대학교 출판부, 1981], 『한 외교관의 영국이야기』[정우사, 1987], 김현수와 공저한 『국제법해설』[연경문화사, 1996], 『나라를 사랑한 벽창우』[동아일보사, 2008] 등이 있다.
대영제국훈장 명예 2등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