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남북총리회담은 1990년에 개최되었다. 1989년 2월 8일부터 1년 반 동안 판문점에서 남북고위급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이 개최되었고, 회담 개최에 합의한 후, 1990년 9월부터 1992년 9월까지 총 8회에 걸쳐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남북 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회담이 개최되었다. 두 번째 남북총리회담은 2007년 제2차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10·4 선언’ 이행을 위해 2007년 11월 14일부터 16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첫 번째 남북총리회담은 국제적 차원의 탈냉전 무드를 한반도 차원으로 연동하면서 적대적 대결 관계를 화해협력 관계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으며, 두 번째 총리회담은 제2차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남북한 교류협력사업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첫 번째 총리회담은 1990년부터 1992년까지 총 8회 개최되었다.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은 1990년 9월 4일서울에서, 제2차 회담은 10월 16일평양에서, 제3차 회담은 12월 11일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제4차 회담은 1991년 10월 22일평양에서, 제5차 회담은 12월 13일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제6차 회담은 1992년 2월 18일 평양에서, 제7차 회담은 5월 5일서울에서, 제8차 회담은 9월 18일평양에서 개최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총리회담인 제1차 남북총리회담은 2007년 11월 14일부터 16일까지 2박 3일간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첫 번째 총리회담의 제5차 회담에서 남한과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1991.12.13, 서울)를 채택하여 서명했고, 제6차 회담(1992.2.18, 평양)에서는 합의서 문건을 정식으로 교환하고 발효시켰다. 그러나 1992년 12월로 예정되어 있던 제9차 회담이 ‘남한조선노동당 간첩사건’으로 무산되고, 1993년 초 북한이 팀스피리트훈련을 핑계 삼아 모든 남북대화를 거부한 이후, 남북대화에서 고위급회담의 형식은 특사파견과 정상회담의 형태로 변화했다.
두 번째 총리회담인 2007년 회담에서 남북은 ‘제1차 남북총리회담 합의서’와 ‘서해평화추진위원회 구성운영합의서’, ‘경제협력공동위원회 구성운영합의서’ 등 총 3개의 부속합의서를 채택했다. 그러나 이후 남북관계가 냉각되면서 상기 합의서의 이행과 후속 회담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첫 번째 회담의 성과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남북고위급회담 분과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 남북교류·협력공동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 등에 서명하며 남북관계 개선의 여건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 회담의 성과는 남북한 화해협력의 분위기를 연장시키고, 교류협력사업의 양적 팽창을 도모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