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에 서용보는 김달순도 관계되었다고 하여 인책하려 하였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책 도중 순조의 동가(動駕) 때에 불참하였다는 죄목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복직되어 이조판서에 임명되었다. 1805년 홍문관제학을 거쳐 전 호조판서 이서구(李書九)가 죄를 쓰고 물러감에 따라 호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이서구의 잘못을 밝히지 않고 비호하였다는 죄목으로 유배를 당한 뒤 그 해 특지로 우의정이 되었다. 그 뒤 『정조실록(正祖實錄)』을 바치고 『선조보감(先祖寶鑑)』의 편찬을 청하였다.
벽파(僻派)였던 김달순은 박치원(朴致遠) 등을 추증(追贈)하라고 아뢰었다가, 1806년 형조참판 조득영(趙得永) 등 시파(時派)로부터 정조의 유지에 위배된다는 공격을 받고, 홍주목을 거쳐 남해안에 안치되었다가 다시 강진현에 이배되어 사사되었다. 뒤에 다시 신원되었다. 시호는 익헌(翼憲)이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속조야집요(續朝野輯要)』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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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진사 급제 : 『숭정3기유식년사마방목(崇禎三己酉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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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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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우의정 임명 : 『순조실록』 7권, 1805년(순조 5) 12월 7일. "특지로 서매수를 영의정에, 한용귀를 좌의정에, 김달순을 우의정에 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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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시호 추증 : 『순종실록』 4권, 1910년(순종 3) 8월 20일. "서기 등 26명에게 시호를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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