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동래부사, 황해도관찰사,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89년 오두인(吳斗寅) · 박태보(朴泰輔) 등과 함께 인현왕후(仁顯王后) 폐출의 부당성에 대한 소를 올린 바 있다.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이 몰려나고 서인이 정권을 잡자, 사헌부에 발탁되어 우의정 최석정(崔錫鼎)의 삭탈관작을 청하고 훈련대장 신여철(申汝哲)의 추고를 청하는 등 강경한 언론을 많이 행사하여 여러 번 체직당하기도 하였다. 그 뒤 동래부사 · 황해도관찰사 등 외직을 거쳐 오랫동안 승지에 임용되었으며 관직이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재능이 있고 근면하였으나 일을 처리하는 데 가혹한 점이 있어 주위의 원망을 사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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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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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최석정 탄핵 상소 : 『숙종실록』 32권, 1698년(숙종 24) 6월 20일. "양사에서 합계하여 우의정 최석정의 삭탈 관작과 문외 출송하기를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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