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백교

  • 종교·철학
  • 단체
  • 일제강점기
1923년 우광현(禹光鉉)이 창시한 종교.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탁명환 (국제문제종교연구소, 종교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가평 백백교 옛터의 칠성단 미디어 정보

가평 백백교 옛터의 칠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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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23년 우광현(禹光鉉)이 창시한 종교.

내용

전정예(全廷藝)의 백도교(白道敎)를 개칭하여 세운 신종교이다. 우광현은 백도교 교주 전정예가 1919년에 사망하자, 그의 죽음을 숨기고 전정예의 아들 전용해(全龍海)와 상의하여 암매장하였다.

그런데 1920년 평안남도 강서의 정성희(鄭聖禧)가 그의 아버지 정근일(鄭根一)이 백도교에 빠져 재산을 탕진한 데 격분, 경찰에 고발하자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전정예가 죽은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고, 많은 신도들이 이탈하였다.

이에 우광현은 교명을 백백교로 바꾸고 전정예를 교조로, 그리고 자신을 교주로 하는 새 교단을 창설하였다. 1924년 우광현이 교주직을 사임하고 김공연(金公然)이 취임하였다가, 1927년에는 차병간(車秉幹)이 교주가 되면서 본부를 서울로 옮겼다.

그 때까지 실질적인 교단업무는 전용해가 맡아왔다. 이 교는 희대의 살인사건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였는데, 전용해는 간부 문봉조 등 18명과 함께 신도 314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어, 1940년에 모두 체포되어 12명이 사형을 선고받고 나머지도 무기 내지 수년씩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도주하였던 전용해는 경기도 양평 용문산에서 시체로 발견되었고, 이 교는 소멸되었다. 백백교는 전용해를 천부님의 아들로 받들고 세상은 멀지 않아 불심판과 물심판을 받게 되는데, 이때 살아남기 위해서는 피난소를 찾아야 한다면서 전국 53개소에 임시분소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 『朝鮮の類似宗敎』(村山智順, 조선총독부, 1931)

  • - 「백백교사건(白白敎事件)」(탁명환, 『현대종교』, 198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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