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환(李家煥)의 『동패낙송(東稗洛誦)』 속집에 의하면,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가 서울에 살던 시절에 김두량이 그로부터 그림을 배웠다고 한다. 1717년에 수군통제영에 화원으로 배속되었다가 1725년 효장세자 추존 등을 위한 책례도감에 참여했다. 1728년에는 분무원종공신 녹훈도감에 차출되어 공신들의 초상을 그렸다.
1744년에 그린 「월야산수도(月夜山水圖)」에서 완숙한 기량을 보였고, 같은 해에 아들 김덕하(金德夏)와 함께 창경궁 연경당(延慶堂)에서 「춘하도리원호흥경도(春夏桃李園豪興景圖)」, 「추동전원행렵승회도(秋冬田園行獵勝會圖)」의 밑그림을 그렸다. 「흑구도(黑狗圖)」에서는 청나라를 통하여 수입된 서양 화법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한편, 그가 그린 「삽살개」에는 당시 국왕이었던 영조의 제화시가 쓰여 있어 눈길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