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도경(道卿), 호는 남리(南里), 운천(芸泉). 사과(司果) 김효강(金孝綱)의 아들이며, 화원 함제건(咸悌健)의 외손자이다. 22세에 화사군관으로 삼도통제영에 배속되었다. 후에 도화서별제(圖畵署別提)를 지냈다.
윤두서(尹斗緖)의 그림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적인 북종화법을 따르면서도 남종화풍과 서양 화법을 수용한 작품을 남겼다. 산수, 인물, 풍속, 영모(翎毛) 등 여러 방면의 소재에 능숙하였고, 신장도(神將圖)를 잘 그렸다.
현존하는 작품 가운데 전통 화법을 따른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것은 1744년(영조 20년) 49세에 그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월야산수도(月夜山水圖)」이다. 이 작품은 해조묘(蟹爪描 : 나뭇가지를 게의 발이 갈라지듯 그리는 표현법)의 수지법(樹枝法), 바위의 부벽준법, 급류로 표현된 계곡, 구도 등으로 전형적인 명나라의 북종화 계통을 따르고 있다.
아들 김덕하(金德廈)와 함께 그린 작품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춘하도리원호흥도권(春夏桃李園豪興圖卷)」과 「추동전원행렵도권(秋冬田園行獵圖卷)」은 긴 횡권의 사계절 풍속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의 산수 표현에는 남종화풍의 영향이 엿보인다.
그의 작품에서 새로운 서양 화법의 수용을 보여 주는 화제(畵題)는 동물화이다. 「흑구도(黑狗圖)」와 「자웅견장도(雌雄犬將圖)」 그리고 황소와 낮잠 자는 목동을 그린 「목우도(牧牛圖)」 등은 입체적인 음영법을 구사하여 사실적인 묘사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화법으로서, 당시 청나라로부터 유입된 서양 화풍의 수용을 시사해 준다. 당시에 서양 화풍의 유입을 알려 주는 대표작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맹견도(猛犬圖)」가 있는데, 그의 동물화는 이 그림의 필치와 유관함을 보여 준다.
이 밖에 인물화로서 강세황(姜世晃)의 화평(畵評)이 있는 「고사몽룡도(高士夢龍圖)」는 그가 신장 그림에 뛰어났음을 보여 준다. 화원으로서 별제에 발탁되었고, 영조의 총애를 받아 남리라는 호를 직접 하사받았던 것으로 보아 화원으로서의 평가가 대단히 높았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