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량 ()

흑구도 / 김두량
흑구도 / 김두량
회화
인물
조선 후기, 「월야산수도」, 「춘하도리원호흥도권」, 「흑구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
이칭
남리(南里), 운천(芸川)
도경(道卿)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96년
사망 연도
1763년
본관
경주(慶州)
주요 작품
흑구도
주요 관직
도화서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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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김두량은 조선 후기 「월야산수도」, 「춘하도리원호흥도권」, 「흑구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산수·인물·영모·풍속 등 여러 화목에 뛰어났다. 조선 후기의 화원 가문으로 널리 알려진 경주 김씨 출신으로, 아버지와 형제, 아들, 조카까지 화원으로 활동했다. 공재 윤두서가 서울에 있던 시절에 김두량이 그에게서 배웠다고 전한다. 전통적인 산수화 「월야산수도」, 서양화 기법의 영향을 받은 듯한 「흑구도」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고, 아들 김덕하와 합작한 작품도 있다.

정의
조선 후기, 「월야산수도」, 「춘하도리원호흥도권」, 「흑구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경주이다. 자는 도경(道卿)이고, 호는 남리(南里) · 운천(芸川)이다.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효강(金孝綱, 1663~1729)의 아들이다. 형인 김두근(金斗根), 김두기(金斗機), 조카 김덕중(金德重), 김덕성(金德成), 김덕구(金德九), 김덕문(金德文)이 모두 도화서 화원으로 봉사했다. 김두량의 외할아버지 함제건(咸悌健)과 그의 아들 함세휘(咸世輝)도 통신사행을 수행한 화원으로 일본을 다녀온 이력이 있는 등 친인척 중에 화업으로 입신한 인물이 많다.

주요 활동

이가환(李家煥)의 『동패낙송(東稗洛誦)』 속집에 의하면,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가 서울에 살던 시절에 김두량이 그로부터 그림을 배웠다고 한다. 1717년에 수군통제영에 화원으로 배속되었다가 1725년 효장세자 추존 등을 위한 책례도감에 참여했다. 1728년에는 분무원종공신 녹훈도감에 차출되어 공신들의 초상을 그렸다.

1744년에 그린 「월야산수도(月夜山水圖)」에서 완숙한 기량을 보였고, 같은 해에 아들 김덕하(金德夏)와 함께 창경궁 연경당(延慶堂)에서 「춘하도리원호흥경도(春夏桃李園豪興景圖)」, 「추동전원행렵승회도(秋冬田園行獵勝會圖)」의 밑그림을 그렸다. 「흑구도(黑狗圖)」에서는 청나라를 통하여 수입된 서양 화법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한편, 그가 그린 「삽살개」에는 당시 국왕이었던 영조의 제화시가 쓰여 있어 눈길을 끈다.

참고문헌

원전

『동패낙송속(東稗洛誦續)』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논문

이정은, 「영조 어제로 본 김두량 「삽살개」의 연구」(『문물연구』 30, 동아시아문물연구학술재단, 2016)
이원복, 「김두량 김덕하 부자의 견도: 기준작과 추정작의 문제를 중심으로 」(『동악미술사학』 15, 동악미술사학회, 2013)
김상엽, 「남리 김두량의 작품세계」(『미술사연구』 11, 미술사연구회, 1997)
관련 미디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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