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화원 두량(斗樑)의 아들이다. 화원 출신으로 벼슬은 과인찰방(科仁察訪)을 지냈다. 1748년 숙종어진(肅宗御眞) 모사(模寫)에 장득만(張得萬) 등과 함께 활약했으며, 이때 윤덕희(尹德熙)는 감조관(監造官)으로 참여하였다.
유작으로 1744년 아버지와 함께 그린 「사계산수도권(四季山水圖卷)」(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 전한다. 사계절의 경치와 풍속이 ‘도리원호흥경(桃李園豪興景)’과 ‘전원행렵승회(田園行獵勝會)’라는 제목 아래 나누어 그려져 있는 이 그림의 표제에 의하면, 김두량은 밑그림을, 김덕하는 채색을 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남종화풍(南宗畵風)의 부드러운 필치와 아름다운 담채(淡彩)가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1696년 청대(淸代)의 초병정(焦秉貞)에 의해 목판화로 제작된 「패문재경직도(佩文齋耕織圖)」의 장면을 가장 먼저 수용하여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