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좌의정, 영의정, 영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 공조판서가 되었다가 좌찬성을 거쳐 좌의정에 올랐다. 이 해 실록총재관으로 『철종실록(哲宗實錄)』을 편찬하고 조두순(趙斗淳) · 이유원(李裕元) 등과 함께 찬집소총재관으로 『대전회통(大典會通)』을 완성하였다.
보수적인 척화론자로서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의 탄압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다. 또한 병인양요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흥선대원군을 권고해 당시 척화론을 주장하던 이항로(李恒老)를 승정원동부승지로 등용하도록 천거하였다. 영의정을 거쳐 1875년 영돈녕부사가 된 뒤 조일수호조약(朝日修好條約)의 체결에 극렬하게 반대하였다.
1879년 사망하기 직전에도 판부사 홍순목(洪淳穆) · 한계원(韓啓源), 영의정 이최응(李最應), 좌의정 김병국(金炳國) 등과 함께 연차(聯箚: 연맹으로 왕에게 쓴 건의문)를 올려 일본이 요구하는 인천 · 원산의 개항 가운데 인천만은 서울의 백 리 안에 있으므로 결코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참고문헌
- 『철종실록(哲宗實錄)』
- 『고종실록(高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청선고(淸選考)』
- 『매천야록(梅泉野錄)』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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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一(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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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이항로 천거 : 『고종실록』 3권, 1866년(고종 3) 9월 8일. "양이들의 창궐과 관련하여 강화도 방어를 철저히 하도록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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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인천 개항 반대 상소 : 『고종실록』 16권, 1879년(고종 16) 7월 16일. "시임 대신과 원임 대신이 연명으로 인천 개항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상소를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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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시호 추증 : 『고종실록』 16권, 1879년(고종 16) 8월 29일. "졸한 영돈녕부사 김병학에게 문헌이라는 시호를 증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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