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의 스피드와 테니스의 다양한 율동을 혼합한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경기는 물론 레크리에이션으로서도 남녀노소 구별없이 누구나 적당한 공간만 있으면 계절에 무관하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경기장은 단식일 경우 세로와 가로의 길이가 13.40×5.18m, 복식일 경우 13.40×6.10m로서, 경기장 가운데에는 높이 1.55m인 포스트(post)와 76㎝인 네트를 두게 된다.
경기장 라인의 너비는 4.0㎝로 백색 혹은 흑색으로 경기장 바닥과 뚜렷이 구분되는 색깔로 긋는다. 코트의 설치는 비를 막을 수 있고 경기중에 외기(外氣)의 통풍을 차단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경기용구로는 라켓과 셔틀콕이 있다. 라켓에는 공식적 규정이 없으나 현재 쓰이고 있는 것은 중량 110∼140g 정도, 전체길이 66㎝의 것이다. 셔틀콕에는 새털로 만든 것과 나일론·플라스틱으로 만든 모조 셔틀의 두 가지가 있다.
셔틀콕의 공식적인 규격은 무게 4.73∼5.50g, 콜크대(臺)의 직경 2.5∼2.8㎝, 날개의 끝에서 콜크대까지의 길이 6.4∼7.0㎝, 깃털의 수 14∼16개 등으로 되어 있다.
배드민턴경기는 남녀 단식과 복식 그리고 혼합복식으로 구분되며 단식은 양편 각 1명씩, 복식은 양편 각 2명씩 조를 이루어 경기한다. 경기 전 양편이 토스를 하여 이긴 편이 첫 서브권, 또는 코트 선택권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며 진편은 나머지를 택하게 된다. 3게임(2게임 선취 시 승리)을 원칙으로 하며 한 게임 21점(초등부는 17점)을 선취한 편이 승리한다. 해당 랠리에서 이긴 편이 득점한다(즉, 서브권을 갖지 않은 편도 득점 가능). 20:20 동점인 경우 2점을 연속하여 득점한 편이 승리하며 29:29인 경우 30점에 먼저 도달한 편이 승리한다.
근대 배드민턴의 기원은 인도에서 성행하는 ‘푸나(poona)’라는 놀이라고 전해진다. 이 놀이가 영국에 전해지면서 배드민턴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어 근대스포츠로 발전하게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1873년경 영국 사관생도에 의하여 푸나가 전해지고 공작 보퍼트가 이 경기에 열중하여 경기의 방법을 정리하였기 때문에 그의 저택이름을 따서 배드민턴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 뒤 영국 전역에 보급되었고 1893년에는 영국배드민턴협회가 창설되어 경기규칙이 통일되었다. 1899년에는 제1회 전영국선수권대회가 런던에서 실시되어 남자복식·여자복식·혼합복식 경기가 실시되었다.
1900년에는 남자단식·여자단식 경기가 추가 실시되어 그 뒤 전영국선수권대회는 세계대전 당시를 제외하고 매년 개최되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시합으로 발전해왔다.
1934년에는 국제배드민턴연맹(IBF)이 창설되어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50여개 국이 가맹하였다. 1948년에는 남자세계선수권대회(토마스컵), 1956년에는 여자선수권대회(우버컵)가 시작되어 3년마다 시합을 개최하고 있다.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1962년 제5회 자카르타대회 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올림픽경기에서는 1972년 제20회 뮌헨올림픽대회 때 시범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 배드민턴이 보급된 것은 1945년 광복 후에 대한기독교청년회연합회(YMCA)를 통해서였는데, 초창기에는 비닐 셔틀을 사용하는 등 운동효과가 적어 큰 발전이 없었다. 그러나 6·25전쟁 이후 깃털로 된 셔틀의 사용과 함께, 레크리에이션 요소가 많고 동양인에게 적합한 운동이라는 장점 때문에 점차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1957년 11월에는 배드민턴협회가 구성되어 그 해 12월에 처음으로 창립기념 전국남녀배드민턴대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 뒤 1961년 제42회 전국체육대회에서는 시범경기를 보였고, 1962년에는 대한체육회 산하단체로 가입하게 되어, 1963년 제43회 전국체육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963년 7월에는 국제배드민턴연맹에 가입하고, 1966년 제5회 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 처녀출전하여 여자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하기도 하였다. 제1회 아시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는 여자복식을 석권하였고, 1964년 국제학생선수권대회에서는 여자부 단체 2위의 성적을 올렸다.
1977년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세계배드민턴연맹(WBF)에 가입하여, 1978년 제1회 세계배드민턴선수권대회에서 개인단식 및 개인복식에서 3위를 하였다. 1981년 제71회 전영국선수권대회에서는 황선애(黃善愛)가 개인단식 1위, 여자복식 3위를 차지하여 국위를 선양하게 되었다.
이 대회는 국제배드민턴연맹이 개최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시합으로서 우리 나라 배드민턴의 실력이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되어 왔음을 입증하였다.
그 뒤에도 우리나라의 배드민턴은 세계적인 수준을 고수하여, 1985년 일본오픈선수권대회에서 박주봉(朴柱奉)·김문수(金文秀)·김연자·유상희의 남녀 복식이 각각 1위를 차지하였고, 제75회 영국오픈선수권대회에서도 남자복식 1위, 여자복식 3위를 차지하였다.
특히,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남자단체·남자복식·혼합복식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룩하여 우리나라 배드민턴이 세계에 기염을 토하게 되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대회에서는 박주봉·김문수 조가 남자복식 1위, 황혜영(黃惠英)·정소영(鄭素英) 조가 여자복식 1위, 1996년 아틀란타올림픽대회에서는 방수현(方銖賢)이 여자단식 1위, 김동문(金東文)·길영아(吉永雅 )조가 혼합복식 1위를 하여 세계 상위권임을 재확인하였다.
국내경기로는 전국종별배드민턴대회·전국종합배드민턴선수권대회·신인배드민턴선수권대회 등 7, 8개 대회가 해마다 열리고 있어, 배드민턴의 보급이 확대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