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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필 풍속도화첩 중 활쏘기
김홍도필 풍속도화첩 중 활쏘기
체육
개념
활을 쏘아 표적을 맞추어 승부를 겨루는 우리나라의 전통무술.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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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활을 쏘아 표적을 맞추어 승부를 겨루는 우리나라의 전통무술.
내용

우리의 역사를 보면 활쏘기[弓術]는 선사시대부터 행하여졌으며, 이는 함경도·충청도·경상도 등 전국 각지에서 출토된 타제석촉이 이를 증명해 준다.

중국의 ≪사기 史記≫와 ≪진서 晋書≫·≪삼국지 三國志≫ 등에는 우리 나라의 숙신(肅愼)·읍루(挹婁)·말갈(靺鞨)·예(濊)·부여·고구려 때부터 우수한 활과 화살이 있었고, 그 우수함이 중국까지 알려졌다고 한다.

대표적인 궁시(弓矢)로는 단궁(檀弓)과 호시(楛矢) 그리고 각궁(角弓)이 있는데, 단궁은 그 힘이 강하여 400보나 나가며, 청석으로 만든 화살촉은 그 질이 쇠와 같다고 하였다.

또 신라에서는 화살이 1,000보가 나가는 노(弩)를 만들어 쓰는 것을 보고 당나라 왕이 이를 가르쳐주기를 간청하였다는 기록을 보면 우리 민족은 궁시를 제작하고 다루는데 우수한 기량을 가져 주위의 여러 민족이 우러러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시대의 발달과 더불어 활쏘기는 대중화된 무예[射藝]로 발전하였으며 양반의 자제가 반드시 익혀야 할 필수과목으로 우리 조상들은 이를 통해 심신단련 및 장부(丈夫)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왔다.

궁도(弓道)는 이렇듯 조상의 얼과 슬기가 담긴 전통무예를 바탕으로 하여 발전한 스포츠로서 조상의 슬기와 얼을 만끽할 수 있는 점과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특징과 효과가 있다. 또한 혼자서 즐겁게 수련할 수 있고, 건강 및 정신수양에 알맞은 스포츠이기도 하다.

현재 궁도경기는 단체전과 개인전으로 크게 구별된다. 단체전에는 시·도 대표 7명이 출전해 상위 5명의 기록합계로 순위를 정하는 시·도 대항전과 사정(射亭)대표 5명이 출전하는 정대항전(亭對抗戰)이 있고, 개인전에는 유단자만이 참가할 수 있는 유단자전과 무단자들이 참가하는 남자개인전, 여자개인전이 있다.

경기방식 및 진행은 각 대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보통 시·도 대항전인 경우, 각 시·도 대표 1명을 1개 조로, 정(亭)대항전에는 같은 사정에서 출전한 5명을 1개 조로, 개인전인 경우는 참가신청 순위에 따라 7명 1개 조로 하여 대(隊)를 편성하는데 각 대(隊)는 교대로 나와 1순(巡)씩 쏘며, 전체기록 합계로 등위를 결정한다.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의 궁시 역시 대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활은 대한궁도협회에서 공인한 각궁과 F.R.P.궁을 사용하도록 제한하고 있으며 시·도 대항전 및 종합선수권대회에서 각궁만을 사용해야 한다. 또한 조준기 등과 같은 인위적인 기계장치 등을 전연 부착시킬 수 없다.

조선시대까지 사용되던 활은 전시용(戰時用)·수렵용(狩獵用)·연악용(宴樂用)·습사용(習射用) 등을 합하여 모두 7종류가 있었는데 정량궁(正兩弓)·예궁(禮弓)·목궁(木弓)·철궁(鐵弓)·철태궁(鐵胎弓)·동개활·각궁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새로운 무기가 유입됨에 따라 현재까지 전해오는 활은 습사(習射), 즉 운동용(運動用)의 각궁뿐이고 나머지 활은 전해오지 않고 있다.

조선시대까지 사용된 화살의 종류에 관하여 살펴보면 목전(木箭)·철전(鐵箭)·예전(禮箭)·편전(片箭)·동개살·장군전(將軍箭)·세전(細箭)·유엽전(柳葉箭) 등 8가지 종류가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은 습사용의 유엽전 뿐이다.

궁도협회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무예인 궁도를 통하여 국민정신 함양 및 체위향상에 기여하고 전해 오는 사풍(射風)의 장점을 계승 발전시킴으로써 궁도의 찬란한 역사와 전통적 국기적(國技的) 가치를 발휘하기 위하여 창립되었다.

1922년 7월 종로구 사직동의 황학정(黃鶴亭)에서 황학정을 관리하던 우두머리 사두였던 성문영(成文永)이 주재하여 발기인 35인이 대한궁도협회의 전신인 조선궁술연구회(朝鮮弓術硏究會)를 창립했으며, 1926년 5월에는 그 명칭을 조선궁도회(朝鮮弓道會)로 바꾸었다.

그 뒤 일제강점기하에서 점차 위축되어 겨우 명맥만을 유지해 온 조선궁도회(朝鮮弓道會)는 광복 이듬해인 1946년 2월 조선궁도협회(朝鮮弓道協會)로 다시 이름을 바꾸고 임원을 선출하였다.

1948년 3월 대한체육회가 발족하면서 대한궁도협회(大韓弓道協會)로 개칭하고 같은 해 10월에는 협회 헌장을 제정하였다. 1954년 3월 대한체육회가 발족하면서 대한궁도협회는 그 가맹단체로 가입하였고, 1955년 2월에는 협회헌장을 개정했으며, 1961년 11월에는 협회헌장이라는 이름을 정관(定款)으로 바꾸었다.

1962년에는 우리의 전통 민속궁(民俗弓) 분야가 아닌 양궁(洋弓)을 도입해 각급학교에 보급시키는 한편 1963년 7월 국제궁도연맹(國際弓道聯盟)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였다.

1978년 12월 방콕에서 개최된 제8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여자부 개인종합 우승 및 단체종합 2위를 차지하였으며, 1979년 7월에 서베를린에서 개최된 제30회 세계궁도선수권대회에 처음 출전하여 여자부 단체종합우승 및 개인종합우승의 쾌거를 이룩한 이후 올림픽을 위시한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여 명실공히 세계양궁 강국으로서의 기틀을 만들었다.

1983년 3월 양궁 분야를 대한양궁협회로 분리시켰으며 이후 대한궁도협회는 우리의 전통무예인 궁도만을 전담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궁도』(대한궁도협회, 1992)
『조선의 궁술』(이중화, 학문각, 1970)
「고려시대체육발전사연구」(정찬모, 동아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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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정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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