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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를 착용한 2명의 경기자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죽도로 상대방의 특정부위를 때리거나 찔러서 승패를 겨루는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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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호구를 착용한 2명의 경기자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죽도로 상대방의 특정부위를 때리거나 찔러서 승패를 겨루는 경기.
내용

검도는 냉철한 판단력과 재빠른 동작, 대담한 정신력이 요구되는 운동으로 남녀노소 구별 없이 일생을 통하여 수련할 수 있는 호신무술이다. 검도는 칼을 사용하는 경기로 칼의 기원과 역사를 같이한다. 원래 칼은 날이 한쪽인 것을 도(刀), 양쪽인 것을 검(劍)으로 칭하는 것이 원칙이나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혼칭하고 있다.

검법에는 우리의 것인 본국검(本國劍)과 일본의 것인 왜검(倭劍), 중국의 것인 월도(月刀)와 같이 나라에 따라 특징이 있으나, 우리나라 본국검은 신라 때부터 화랑에 의하여 전수되었다 하여 신라검(新羅劍) 또는 신검(新劍)이라 일컫는다.

고려 말기의 화약발명과 조선시대의 천무사상(賤武思想)으로 쇠퇴하였다가 임진왜란 뒤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군사훈련을 시작함으로써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이는 정조 때 편찬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24반무예 중 본국검 수련이 있음을 보아 알 수 있다.

그 뒤 고종 때에 이르러 구미식 군사훈련을 개시한 뒤 자취를 감추었으나, 1896년 경무청에서 경찰훈련과 육군연무학교의 군사훈련과목에 검술과목이 채택되면서 일본식 검도가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1916년에 오성학교(五星學校)에서 검도교육시설을 갖추어 일반청년층을 지도했고, 1921년에는 조선무도관이 설립되어 보급이 진척되었으며, 1927년부터는 중학교 교과목으로 채택하면서 더욱 발전하였다.

그러나 광복 후 검도는 일제의 잔재라고 인식되어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나, 1948년 6월 3일 재경유단자(在京有段者)들이 모여 대한검사회(大韓劍士會)를 조직하여 명맥을 유지시켰으며, 1949년 5월에는 경찰상무회(警察尙武會)를 조직하고 시·도지부를 설치하였다. 또, 1953년 11월 20일 대한검도회(大韓劍道會)의 창립과 동시에 대한체육회에 가입하고, 12월에 각 시·도에 사범을 배치하여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65년에는 국제사회인검도구락부(國際社會人劍道俱樂部)가 조직되어 대만에서 세계대회를 개최하였으며, 1969년 제4회 대회는 우리나라에서 개최되어 단체전 2위, 개인전 5단 이하부 1위·3위를 하였다. 1970년 4월 4일에는 국제검도연맹의 발족과 동시에 회원국이 되었고, 제1회 세계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으며, 이 때 우리나라도 출전하였다.

그 뒤 지금까지 매3년마다 대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197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제2회 대회에서 이종림(李種林)이 개인 3위에 입상하였으며, 1979년 7월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제4회 대회에서는 우리나라팀이 단체 준우승을 하였고, 1982년 7월 25일 브라질 상파울로에서의 제5회 대회에서는 단체전 3위를 하였다. 1988년 제7차 대회를 서울에서 유치하여 성공적으로 치러 세계검도계에 한국검도의 위상을 높였으며, 이 대회에서 단체 준우승과 개인 3위(金景男)에 입상하였다.

이후 1998년 제10회 대회까지 매 대회 단체 준우승에 입상하였다. 주니어대회는 1974년부터 3년 간격으로 열리어, 1980년 8월에 하와이의 호놀룰루에서 개최된 제3회 대회에서는 박중채(朴中彩)가 개인우승을 차지하는 개가를 올렸으나 3회 이후 대회개최가 중단되었다.

국내 대회로는 전국체육대회·대통령기 전국일반검도선수권대회·이충무공탄신기념대회·광복절기념대회·SBS배 전국검도왕대회 등 10여 개의 대회가 있으며, 현재는 경찰·교도관을 위시하여 각급 학생층에 널리 보급되고 있다.

현재 각 시·도의 등록선수는 6,040(1998년 현재)여 명이며, 경기장은 구획선을 포함하여 9∼11m 이내의 면적을 가진 마루 또는 평평한 지면으로 하며, 바깥쪽에는 1.5m 이상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 선은 5∼10㎝의 백선으로 한다.

경기용구로는 호면(護面)·호완(護腕)·갑(甲)·갑상(甲裳)을 사용하고 단련복은 반소매 상의에 긴바지를 입으며, 죽도를 사용한다. 경기는 개인경기와 단체경기가 있다.

개인경기는 3판 승부를 원칙으로 하며, 경기시간에 두 판을 선취한 자를 승자로 한다. 다만 제한시간 내에 한 편이 한 판만을 이겼을 경우는 이를 승(勝)으로 하며, 승부가 나지 않으면 연장전을 하여 선취자를 승으로 한다.

단체경기는 미리 정한 순위에 따라 개인경기를 행하여 단체승부를 정한다. 경기 때 공격부위는 타격부위로 머리·손목·허리가 있으며, 찌름부위로 목이 있다. 경기장을 벗어나거나(장외) 고의로 상대를 장외로 밀어내는 경우 또는 호구가 없는 부위를 타격하거나 상대를 무시하는 언동을 하면 반칙이 된다.

심판은 주심 1명, 부심 2명으로 구성하며, 2명 이상의 심판원이 유효격자의 표시를 하였을 때 한판으로 인정한다.

참고문헌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대한체육회 50년』(대한체육회, 1970)
『대한체육회사』(대한체육회,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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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정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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