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전기에, 한림학사승지, 좌군수, 지추밀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117년 금나라 사신이 와서 형제국이 되기를 청하자, 금나라를 회유하기 위해 화의할 것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렸으나 재상들의 제지로 왕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인종이 동궁으로 있을 때 첨사부사직(僉事府司直)이 되어 문학으로서 우대를 받았고, 인종이 즉위하자 어사중승(御史中丞)에 발탁되었다.
1124년(인종 2) 사은부사로 송나라에 다녀왔으며, 대사성과 이부·호부·예부의 3부상서(三部尙書)를 거쳐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를 역임하였다. 인종이 변방문제를 묻자, 경성(京城)과 여러 주진(州鎭)의 성을 더 높이고 못을 깊이 파며 무기를 비축하도록 하고, 사자를 보내어 상벌로써 주리(州吏)를 감독해야 한다고 하였다.
1134년 묘청(妙淸)이 서경천도와 신궁건립을 주장하자 형 김부식과 함께 극력 반대하였고, 이듬해 묘청이 반란을 일으키자 장기전략책인 평서십책(平西十策)을 올리고, 좌군수(左軍帥)에 이어 지추밀원사가 되어 출정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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