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선왕의 측근이다. 1310년(충선왕 2) 6월 권신(權臣)인 태안부원군(泰安府院君) 이대순(李大順)이 부인 위씨(韋氏)가 영평궁(永平宮)과 노비문제로 다투게 되었을 때 이를 원나라 황제에게 보고하였다. 원 황제는 언부에게 판결을 지시하였다. 김사원은 산랑(散郎) 이광시(李光時)와 함께 그 안건을 주관하여 위씨에게 노비를 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대순은 분노하여 원나라 사신 팔찰 등에게 황제의 제서를 칭탁하며 김사원 등에게 장형을 가한 뒤 유배를 보내게 하였다.
1311년 평양윤(平壤尹)이 되었으며, 12월에는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에 올랐다. 1316년(충숙왕 3) 4월에 상의회의도감사(商議會議都監事)가 되고 뒤에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가 되었다. 시호는 경정(景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