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교수, 동아일보 편집국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
내용
특히, 6ㆍ25 기간중에 일어난 국민방위군부정사건과 거창양민학살사건을 비판, 이승만(李承晩)정권의 미움을 사 결국 1952년 동아일보를 퇴사하고 일본에서 민족문제연구소를 개설, 소장으로 취임하고 조국의 평화통일문제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통일방안은 중립화통일(中立化統一)이었다. 무력통일을 내세웠던 자유당정권 하에서 중립화 평화통일론을 제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의 통일론의 요지는 4+2의 6자 회담이다. 우리나라의 분단은 강대국의 이해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런만큼 통일도 그들의 이해에 맞아야 한다는 전제 아래 한반도를 에워싼 미·소·중·일 등 4대강국의 이해가 맞는 통일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4자와 남북한이 참가하는 6자회담을 열어 관계국의 안보와 평화에 기여하는 통일방안을 논의한 뒤에 남북한이 자주적으로 통일하는 중립론을 제창하였다.
그의 중립론은 1954년 제네바회담 때 미국과 영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이승만정권에 의하여 즉각 거부되었다. 1957년 일본 동경에서 월간 『코리아평론』을 창간, 주간을 맡아 일본을 무대로 평화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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