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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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규
김삼규
정치
인물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교수, 동아일보 편집국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8년
사망 연도
1989년
출생지
전라남도 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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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교수, 동아일보 편집국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
내용

전라남도 영암 출신. 1931년 일본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문학부 독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45년 동아일보 조사부장이 되었으며, 1947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문학과 주임교수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다시 언론계로 돌아와 1948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1949년 취체역 주필로서 활동하였다.

특히, 6ㆍ25 기간중에 일어난 국민방위군부정사건과 거창양민학살사건을 비판, 이승만(李承晩)정권의 미움을 사 결국 1952년 동아일보를 퇴사하고 일본에서 민족문제연구소를 개설, 소장으로 취임하고 조국의 평화통일문제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통일방안은 중립화통일(中立化統一)이었다. 무력통일을 내세웠던 자유당정권 하에서 중립화 평화통일론을 제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의 통일론의 요지는 4+2의 6자 회담이다. 우리나라의 분단은 강대국의 이해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런만큼 통일도 그들의 이해에 맞아야 한다는 전제 아래 한반도를 에워싼 미·소·중·일 등 4대강국의 이해가 맞는 통일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4자와 남북한이 참가하는 6자회담을 열어 관계국의 안보와 평화에 기여하는 통일방안을 논의한 뒤에 남북한이 자주적으로 통일하는 중립론을 제창하였다.

그의 중립론은 1954년 제네바회담 때 미국과 영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이승만정권에 의하여 즉각 거부되었다. 1957년 일본 동경에서 월간 『코리아평론』을 창간, 주간을 맡아 일본을 무대로 평화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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