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좌윤, 형조참판,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성균관박사 · 봉상시직장(奉常寺直長) · 전적(典籍) · 병조좌랑을 거쳐, 1698년 정언(正言) · 지평을 역임하였다. 이어서 헌납(獻納) · 장령(掌令) · 사간 · 집의(執義) 등의 언관과 사서(司書) · 문학(文學) · 필선(弼善) · 보덕(輔德) 및 병조정랑 · 사예(司藝) 등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또한 암행어사가 되어 경상도의 각 고을을 심문하기도 하였다.
1705년에 좌부승지가 된 이후 승지에 여러 차례 다시 임용되었고, 각 조의 참의를 두루 역임하였으며, 1713년에는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1717년에 강원도관찰사가 되었고, 이듬해에는 함경도관찰사 등을 거쳐 좌윤이 되었으며, 이어서 형조참판 · 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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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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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동지사 활동 : 『숙종실록』 54권, 1713년(숙종 39) 10월 29일. "동지사 조태채 등이 청나라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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