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용만(用萬), 호는 전긍재(戰兢齋). 아버지는 증호조참판(贈戶曹參判) 김정(金梃)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입(權鉝)의 딸이다.
경전을 깊이 연구하였고, 이광정(李光靖)·임성주(任聖周) 등과 학문적인 교유를 하였다. 1726년(영조 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된 뒤 과거공부는 그만두고 성리학 연구에 잠심(潛心)하였다. 수백 권의 책을 손수 써서 읽었는데, 필법도 정교하였다고 한다.
곡령(鵠嶺) 남쪽 기슭에 정사(精舍)를 짓고, 학문 탐구와 후진 양성으로써 일생을 마치기로 뜻을 굳혔으며, 1764년 관찰사의 추천으로 동몽교관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1771년 노직(老職)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제수되고, 이듬 해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라 품계는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전긍재집(戰兢齋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