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일 ()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전긍재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용만(用萬)
전긍재(戰兢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94년(숙종 20)
사망 연도
1780년(정조 4)
본관
풍산(豊山)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전긍재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용만(用萬), 호는 전긍재(戰兢齋). 아버지는 증호조참판(贈戶曹參判) 김정(金梃)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입(權鉝)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경전을 깊이 연구하였고, 이광정(李光靖)·임성주(任聖周) 등과 학문적인 교유를 하였다. 1726년(영조 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된 뒤 과거공부는 그만두고 성리학 연구에 잠심(潛心)하였다. 수백 권의 책을 손수 써서 읽었는데, 필법도 정교하였다고 한다.

곡령(鵠嶺) 남쪽 기슭에 정사(精舍)를 짓고, 학문 탐구와 후진 양성으로써 일생을 마치기로 뜻을 굳혔으며, 1764년 관찰사의 추천으로 동몽교관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1771년 노직(老職)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제수되고, 이듬 해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라 품계는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전긍재집(戰兢齋集)』이 있다.

참고문헌

『전긍재집(戰兢齋集)』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