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규 ()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고창군수, 장성군수, 강원도순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보형(寶衡)
초정(草亭)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64년(고종 1)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안동(安東)
출생지
충청북도 괴산군
주요 관직
고창군수|장성군수|강원도순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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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고창군수, 장성군수, 강원도순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자는 보형(寶衡), 호는 초정(草亭). 연풍(延豊) 출생. 아버지는 현감 김병욱(金炳昱)이다. 가학을 이어받아 유학을 공부하다가, 뒤에 서울에 올라가 수학(數學)을 공부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87년(고종 24) 25세 때 광무국주사(礦務局主事)를 시작으로 벼슬길에 나가, 같은 해 친군우영문안(親軍右營文案)에 올라 주차영덕아의법 전권공사(駐箚英德俄義法全權公使)의 서기관으로 출국하였다가 1889년 귀국하였다.

그 뒤 승정원급분(承政院給分)·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 등을 역임하고, 1894년 갑오경장 이후에는 외직으로 고창군수·장성군수 등을 거쳐 강원도순찰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으나, 조정 권신들의 모함으로 1905년 파직되었다. 그뒤 목포·장성 등지에 학교를 세우는 등 교육사업에 전념하였다.

김성규는 한때 나병을 앓다가 회복되었다. 성품이 강직하여 1908년 조정에서 내린 정2품의 가자(加資: 정3품 이상의 품계를 올리는 일 또는 올린 품계)를 받지 않았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시문에 능하고 글씨도 잘 썼다. 저서로는 『초정집(草亭集)』 12권이 있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면성지(綿城誌)』
『무안읍지(務安邑誌)』
『상주읍지(尙州邑誌)』
『장성군지(長城郡誌)』
『초정집(草亭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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