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응교, 병조참의, 제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45년에 응교(應敎)를 거쳐 의주부윤을 지냈다. 1648년에 병조참의에 임명되고, 이듬 해 제주목사로 부임하였으나 탐관오리로 탄핵을 받아 영남에 유배되었다가, 이경석(李景奭)과 이시백(李時白)의 변호로 1658년(효종 9) 방환되었다.
1662년(현종 3) 풍덕부사(豊德府使)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666년 여주목사에 임명되어 잠시 부임하였다가 벼슬을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시호는 충경(忠景)이다. 저서로는 『남악집(南岳集)』이 있다.
참고문헌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남악집(南岳集)』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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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사마시 급제 : 『천계4년갑자10월13일사마방목(天啓四年甲子十月十三日司馬榜目)』(규장각한국학연구원[想白古351.306-B224s-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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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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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시호 충경의 근거 : 『정조실록』 29권, 1790년(정조 14) 3월 19일. "한인 아병을 한려로 고치고 하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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