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인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후기 양주목사, 수원부사, 익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서예가.
이칭
원보(元甫)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08년(선조 41)
사망 연도
1660년(현종 즉위년)
본관
안동(安東)
주요 관직
익산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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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양주목사, 수원부사, 익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서예가.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원보(元甫). 할아버지는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34년(인조 12) 음보로 선공감역(繕工監役)에 제수되어, 옥책문(玉冊文)을 만드는 데 감독하였고, 이어 전생서주부(典牲署主簿)·사복시부정(司僕寺主簿) 등을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상원현감으로 재직하면서 토산싸움에서 소수의 병력으로 적의 대군과 싸워 많은 공을 세우고 부상당하였다. 그 뒤 증산·의흥·창녕 등지의 현감을 역임하였다.

효종이 그 무재와 방략(方略)을 알고 특별히 양주목사로 임명하고, 얼마 뒤 수원부사로 방어사(防禦使)를 겸임하게 하고 갑옷을 상으로 내려 주었다. 병자호란 때의 부상으로 몸이 쇠약해져 관직을 버리고 보령의 모도(茅島)에서 일생을 마치려고 하였으나, 부모의 봉양을 위해 익산군수로 재직하던 중 죽었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엄하여 어른스러운 기량이 있었으며, 조용히 방안에서 학문을 즐겼다. 서예에도 뛰어나 전서·예서 등을 잘 썼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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