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양주목사, 수원부사, 익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서예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상원현감으로 재직하면서 토산싸움에서 소수의 병력으로 적의 대군과 싸워 많은 공을 세우고 부상당하였다. 그 뒤 증산 · 의흥 · 창녕 등지의 현감을 역임하였다.
효종이 그 무재와 방략(方略)을 알고 특별히 양주목사로 임명하고, 얼마 뒤 수원부사로 방어사(防禦使)를 겸임하게 하고 갑옷을 상으로 내려 주었다. 병자호란 때의 부상으로 몸이 쇠약해져 관직을 버리고 보령의 모도(茅島)에서 일생을 마치려고 하였으나, 부모의 봉양을 위해 익산군수로 재직하던 중 죽었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엄하여 어른스러운 기량이 있었으며, 조용히 방안에서 학문을 즐겼다. 서예에도 뛰어나 전서 · 예서 등을 잘 썼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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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가계 : 『국조인물고』, 김수인의 묘갈명(墓碣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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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상원 현감 재임 : 『인조실록』 33권, 1636년(인조 14) 7월 5일. "특명으로 부제학 유백증을 이조 참판에, 김수인을 상원 현감에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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