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가 몽고에게 항복하자 1260년(원종 1)에 백주소복별감(白州蘇復別監)으로서 야속달(也束達)의 진영으로 달아났다.
별장 우정(于綻)과 함께 머리를 몽고식으로 변발하고 야속달에게 “고려는 위급한 일이 있으면 수도를 제주로 옮길 것이며 옛 서울(개성)에 다시 도읍한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참소하였다.
야속달이 그 말을 믿고 몽고에서 돌아온 고려 태자를 대질시키려고 하자, 태자는 “차라리 이곳에 잡혀 있을지언정 반역자와 대질할 수는 없다.”라고 거절하니, 야속달은 추밀사(樞密使) 김보정(金寶鼎), 지휘(指揮) 김대제(金大材) 등 100인을 구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