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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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 후기에, 야별초지유, 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삼별초의 난
  • 사망 연도1270년(원종 1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야별초지유|장군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정신 (고려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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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에, 야별초지유, 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1268년(원종 9) 야별초지유로서 일찍이 김준(金俊)의 휘하에 있었으나, 임연(林衍)이 김준을 죽일 때 김준의 편에서 방어하지는 않았다.

1270년 고려가 몽고와 강화하고 수도를 강화에서 개경으로 옮긴 후, 삼별초가 반란을 일으켜 근거지를 강화에서 진도로 옮겨가면서 항전을 계속하자, 정부의 명으로 그 해 8월, 장군 양동무(楊東茂)와 더불어 수군을 거느리고 진도를 쳤다.

그러나 삼별초에 의하여 도리어 장흥부(長興府)의 관군 20여 인이 죽고, 재물과 곡식을 탈취당하였다. 같은 해 11월, 여몽연합군의 치열한 공격으로 진도마저 함락되어 삼별초가 제주도로 들어갈 때, 장군으로 군사 70명을 이끌고 영암부사(靈巖副使) 김수(金須)의 뒤를 이어 제주도에 들어가 방어하였다. 그러나 삼별초의 공격으로 전사하였으며, 그 결과 제주도는 함락되어 삼별초의 마지막 근거지가 되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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