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겸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백육애음」, 『증소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 시호문경(文敬)
  • 존보(尊甫)
  • 증소(橧巢)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738년(영조 14)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693년(숙종 19)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기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학)
  • 최종수정 2026년 0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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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백육애음」, 『증소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존보(尊甫), 호는 증소(橧巢). 아버지는 진사 김창업(金昌業)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익풍군(益豐君) 이속(李涑)의 딸이다. 숙부인 김창흡(金昌翕)을 사사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21년(경종 1)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큰아버지인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이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으로 신임사화에 거제도로 유배될 때 연루되어 함께 유배되었다. 1725년(영조 1)에 풀려나 내시교관(內侍敎官)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강원도 영월의 산중에 들어가 산수를 즐기면서 후진 교육에 힘썼다.

김신겸은 당시의 석학인 민우수(閔遇洙) · 유숙기(兪肅基) · 이봉상(李鳳祥) 등과 더불어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 · 명덕설(明德說) 등을 강론하였다. 그는 시문에 뛰어나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특히 「백육애음(百六哀吟)」이라는 사우(師友)들 106명의 행적을 읊은 대서사시를 남겼다.

그는 전국 각지의 명승고적 · 명산 · 바다 · 도서 등지를 두루 구경하고 사적 · 풍속 · 지리 · 산물 등을 소개한 기행문을 많이 남겼다. 이조판서 겸 좨주(祭酒)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저서로는 『증소집(橧巢集)』 10권 5책이 있다.

참고문헌

  • - 『증소집(橧巢集)』

주석

  • 주1

    : 사마시 급제 : 『경자식년사마방목(庚子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20])

  • 주2

    : 김신겸 저술 : 『韓國文集叢刊 : 續』.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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