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강릉(江陵). 신라의 종실인 각간(角干)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시중(侍中)을 지낸 김인존(金仁存)이다.
김영석(金永錫)·김영윤(金永胤)과 함께 삼형제가 문과에 급제하였다. 1134년(인종 12) 원외랑(員外郞)으로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왕의 생신을 축하해 준 것을 사례하였다.
1145년에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박언유(朴彦猷) 등을 뽑았으며, 1147년(의종 1) 이부상서추밀원사(吏部尙書樞密院使)가 되었고, 그 해 지공거가 되어 동지공거(同知貢擧) 김자의(金子儀)와 함께 진사 이유창(李愈昌) 등을 뽑았다.
이듬해 지문하성사 판공부사(知門下省事判工部事)에 이어, 참지정사 판공부사(參知政事判工部事)를 지냈으며, 1149년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판상서병부사(中書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判尙書兵部事)가 되었다.
이듬해 판리부사(判吏部事)에 이어, 감수국사 지서경유수사(監修國史知西京留守事)가 되었다. 1151년 수사도 판국자감사(守司徒判國子監事)에 올랐다.
그의 집 노비인 평량(平亮)은 농사에 힘써 부자가 된 후에 뇌물로 양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