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공군 10전투비행단 초대 단장, 제1전투훈련 비행단장 등을 역임한 군인.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일본군 육군 소위로 함흥지구에 주둔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 후 미군정청 총위부 정보국장대리를 역임하였으며, 항공부대 창설을 역설하다가 여의치 않자 1947년 직책과 부위(副尉)의 계급을 내놓았다. 공군창설 7인의 간부 가운데 한 사람으로 1948년 5월 조선경비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 항공부대 간부로 일하였다.
1949년 공군이 독립되면서 공군으로 전출하여 공군비행단 참모장에 보임되었다. 1951년 공군 대령으로 진급했다. 6·25전쟁 초기 제10전투비행단장을 지내며 F-51(무스탱)기로 30회 이상 출격했다. 1951년 8월 해인사 폭격 명령을 거부하여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보존하는 데 공을 세웠다. 1951년부터 1952년까지 미공군대학에서 항공작전에 관한 교육을 이수한 뒤 귀국하여 1953년 공군 10전투비행단 초대 단장에 취임하여 동부전선의 한국지상군에 대한 근접 항공지원작전과 후방 차단작전을 지휘하였다.
1953년 준장으로 승진하여 제1전투훈련 비행단장이 되었으며, 1954년 3월 5일 F-51(무스탱)기로 사천기지(泗川基地)를 이륙하여 강릉기지로 향하던 중 기상악화로 동해안 묵호상공에서 실종되었다. 6·25전쟁 때 을지훈장·금성충무훈장·금성을지무공훈장·미비행훈장(美飛行勳章) 등을 받았으며, 1954년 대통령수장·미공로훈장(美功勞勳章) 등이 추서되었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