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균전집 ()

근대사
문헌
개항기 때의 문신 · 정치인, 김옥균의 「치도약론」, 「치도약칙」, 「갑신일록」 등을 수록한 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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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개항기 때의 문신 · 정치인, 김옥균의 「치도약론」, 「치도약칙」, 「갑신일록」 등을 수록한 문집.
개설

불분권 1책. 영인본.

한국학문헌연구소에 의해 편집, 1979년 아세아 문화사에서 간행되었다.

서지적 사항

권두에 간행사와 이광린(李光麟)의 해제가 있다. 「치도약론(治道略論)」·「치도약칙(治道略則)」·「갑신일록(甲申日錄)」·「조선 개혁 의견서 및 서(書)」 6편, 「상소문」 1편, 부록으로 동경의 「김씨묘(金氏墓)」 등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치도약론」은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이 끝난 뒤 국가와 사회를 정비하고 백성을 안정시키기 위한 방도를 약술한 것으로 ① 인재의 등용 ② 재용(財用)의 절제 ③ 사치 억제 ④ 국토 개척 ⑤ 영해의 방위 ⑥ 외교 문제 등에 관해 논술한 것이다.

아울러 아시아 선진국들의 치국 3조항을 들어 ① 위생·의약 ② 농상 ③ 도로·교량 등에 치중할 것을 역설했으며, 또한 춘추시대의 치도를 인용, 특히 도로·교량 설비가 급선무임을 강조하였다.

「치도약칙」은 치도국(治道局)을 설치하기 위한 명문(明文) 17조항을 열거한 것으로서, 1∼3조는 치도국의 직제와 사무 분장, 4∼6조는 오물 처리 문제와 이의 위반 시 벌칙 문제, 7·8조는 도로 정비 문제와 순검(巡檢) 사항, 9·11조는 도성 안에서의 환경 사범 벌칙 문제, 10조는 인력거와 마력거의 운영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12조는 거리의 민가에 볏짚으로 지붕을 개수할 것과 야시장의 설치 문제, 13조는 치도·순검·징역 등 시행의 중요성 강조, 14·15조는 순검의 직제와 의무, 16조는 땔나무 판매 규례, 17조는 각 조례 중 소략하고 상세하지 않은 것을 심정(審定)·증감·언역(諺譯)하여 국민에게 배포할 것 등의 내용으로 도시의 위생과 미관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갑신일록」의 서론은 1881년 12월부터 1884년 3월까지 그가 일본에서 망명하고 있을 때의 기록으로, 한국의 정치 정세, 개화당 요인들의 활동, 일본의 대한 정책 등을 서술한 것이다. 본론은 주한 일본 공사 다케조에(竹添進一郎)가 일본에서 귀임한 날인 1884년 10월 30일부터 12월 6일까지의 국내외 정세 및 갑신정변에 관한 전말을 일기체로 서술한 것이다.

「조선개혁의견서」는 조선 정부 개혁 방안을 일본의 정치가인 고토(後藤象次郎)에게 제시하고, 이에 대한 협조를 요청한 것이다. 서의 「치심유서(致沁留書)」는 그의 망명지인 일본에서 강화유수로 있는 이재원(李載元)에게 보낸 밀서로, 갑신정변이 실패한 뒤 재기의 기회를 엿보는 내용의 서한이다.

「여길전청성서1(與吉田淸成書Ⅰ)」는 그가 일본에 망명해 있을 때, 본국 정부에서 보낸 자객 지운영(池運永)으로 인해 일본의 치안을 흐리게 했다는 구실로 일본의 경시총감으로부터 퇴거령을 받은 뒤, 일본의 외무 차관인 요시다(吉田淸成)에게 강제 퇴거령의 철회와 이 조처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의 서한이다.

「여길전청성서 2」는 일본 정부로부터 오가사와라섬(小笠原島)으로 추방된 뒤 일본의 외무 차관에게 보낸 서한으로서, 그곳의 고초가 막심하다는 하소연과 아울러 참선 수행으로 자위하면서 나날을 지내고 있다는 내용이다.

「지운영사건규탄상소문(池運永事件糾彈上疏文)」은 1886년 본국 정부로부터 그를 살해하라는 밀지를 받은 자객 지운영이 실패하자, 국왕에게 이 밀지의 사실 여부를 규명함과 아울러 이에 대한 처사가 억울함을 호소한 상소문이다.

「여이홍장서(與李鴻章書)」는 청나라 정치가인 이홍장에게 보낸 서한으로서, 조선 정부를 사주해 자객을 보내는 따위의 야비한 행동을 중지하고 폭넓은 외교정책을 실행할 것을 충고함과 아울러 조선을 중립국으로 만들어 달라는 청원의 내용이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19세기말의 국내외 정세, 개화당 요인들의 활약상, 갑신정변의 전말 등을 이해하는 데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일성록(日省錄)』
『한국통사(韓國痛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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