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풍산 출신. 이명은 이용대(李溶大, 李瀧大) · 백두산인(白頭山人).
1920년 4월 만주 장백현(長白縣)에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1년 10월 대한독립군비단이 흥업단(興業團) 등과 연합,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으로 조직되었다. 이 때 비서로 선임되어 회장 김호(金虎), 부회장 이은향(李殷鄕), 총무 윤덕보(尹德甫), 의사부장 윤세복(尹世復), 서무부장 석계(石桂), 군사부장 김찬(金燦), 경호부장 한창언(韓昌彦)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22년 5월 대한 광정단(大韓匡正團)이 조직되자 군법과장에 임명되어, 1923∼1924년간 무기를 구입하는 등의 일을 하였다. 1924년 10월부터는 광정단 남부민정서장(南部民政署長)으로 함경북도 대안 지역에서 군수품 구입 등에 힘을 쏟았다.
한편, 1924년 정의부(正義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정의부는 1924년 11월 지린[吉林]에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외 7개 단체가 통합되어 조직된 자치정부의 형태를 띤 무장단체였다. 헌장과 선언문을 발표하고, 조직에 착수, 자치 · 군사 · 교육 · 재정 · 생계의 5개 분과를 두고 분과위원을 선정하였다.
또 중앙행정위원을 선임하여 조직을 매듭지었는데, 오동진(吳東振) · 현정경(玄正卿) · 지청천(池靑天) · 김이대(金履大) · 윤덕보(尹德甫) 등과 중앙행정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정의부에서는 1925년 4월 제3회 중앙의회를 실시하여 포고령 제5호를 결의하였는데, 여기에서 헌장을 개정하고 중앙의원 11명을 증원하였다.
이 때도 이탁(李沰) · 현정경 · 지청천 · 이진산(李震山) · 오동진 등과 함께 중앙행정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