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3년(인종 11) 문과에 급제하였다. 1158년(의종 12) 기거사인(起居舍人)으로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신숙(申淑), 간의대부(諫議大夫) 김양(金諹)·유공재(柳公材), 우정언(右正言) 허세수(許勢修) 등과 상소하여 환관(宦官) 정함(鄭諴)을 권지합문지후(權知閤門祗候)에 임명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상서이부낭중(尙書吏部郎中)·국학직강(國學直講)·지제고(知制誥) 등을 역임하고, 1169년 동지공거(同知貢擧)로 지공거 허홍재(許洪材)와 함께 과거를 주관하여 이익충(李翼忠) 등을 뽑았다.
이듬해 판예빈성사(判禮賓省事)로 낭중 진역승(陳力升)과 함께 노인성(老人星)을 제사지내기 위하여 사당을 짓고 별은기소(別恩祈所)를 세워서 금꽃, 은꽃과 금그릇, 옥그릇을 만들게 하였다.
민영묘지명(閔瑛墓誌銘)과 최윤의묘지명(崔允儀墓誌銘)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