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출신. 아버지 김철보(金哲甫)와 어머니 이봉순(李奉順)의 2자매 중 장녀. 대구사람과 결혼하여 1874년에 남편과 사별하였다는 설과 결혼하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술장사로 돈을 모아 순도학교(順道學校)를 설립하였으며, 1910년에는 고종의 하사금과 지방유지의 기부금 및 자신의 재산으로 대구에 명신여학교(明信女學校)의 창립을 도왔다. 1925년 운영난에 빠진 명신학교의 경영권을 인수하여 이듬해에 복명학교(復明學校)로 개칭하였으며, 건물을 신축한 뒤 재단법인을 설립하고 자신의 이름도 복명(復明)으로 개명하였다.
그 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희도국민학교(熙道國民學校)를 설립하였으며, 대남학교(大南學校) 부속유치원을 비롯하여 여러 사회단체에 기부금을 희사하였다. 그밖에 홍수·가뭄 등으로 인한 이재민구호에 앞장섰으며, 특히 1936년의 흉년에는 많은 구호사업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