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출신. 본성은 남원양씨(南原梁氏)로서 개성 북쪽에서 살았다. 현감을 지낸 김성진(金成鎭)의 손녀이며, 부사를 지낸 김정실(金鼎實)의 손자며느리이다. 11세에 김영종(金永鍾)에게 출가하여 14세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신문화에 관심을 두어 여성교육을 역설하고, 1908년에 개성 송계학당(松桂學堂)을 인수하여 같은 처지의 여성 10여명을 권유, 미국선교사에게 신학문을 배우도록 하였다. 같은해에 기독교인이 되어 김정혜로 개명하였다.
송계학당은 가정집에서 시작한 학당이었으나 1910년경 학생이 130명으로 늘어나고 교사도 3명을 초빙해야 하는 규모로 성장하였다.
1908년 자신의 집에서 정화여학교(貞和女學校)를 설립하였다. 1910년 7월 정화여학교 주최로 열린 연설회에서 여성을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참석인사들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모으기도 하였다. 그밖에도 장학사업 및 노비철폐를 위한 노력 등에 역점을 두었다.
1918년 사재(私財)로 재단법인 정화학교를 설립하였다. 1932년 12월에 세상을 떠났다. 장례는 개성군사회장으로 거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