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광양 출신. 1907년 8월 황영문(黃永文) 의진에 가담하여 광양 일대에서 일본인 사살과 군자금 징수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7년 8월 5일 황영문 의병장의 지휘 아래 광양군 진하면 망덕리에 들어갔다.
그 마을에 거주하는 일본인 이시다[石田耕作]와 가도노[角野仁平]의 집에 들어가 가도노와 그 가족을 사살하고 2채의 집을 소각하였다. 가도노 소유의 양총 1정 등 무기류와 군수품도 노획하였다. 같은 해 안윤석(安閏錫)으로부터 군자금으로 엽전 6관문을 징수하였다.
1908년 12월부터 1910년 1월까지 강치선(姜致善)·고운서(高云西)·송용문(宋龍文)등과 더불어 광양군 진상면의 황병욱(黃炳郁)집에서 2관 500문의 군자금을 징수하는 등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1910년 10월 부산지방재판소 진주부에서 교수형을 선고받고 11월 형이 확정되어 순국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